갈라디아서 3장 9~14절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를 믿는데, 예수님에 대해서 잘 모르고 믿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잘 모르고 믿어도 하나님이 다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이 되지만, 잘 모르고 믿으면, 두 가지 문제점이 생깁니다.
첫째는 인생에 어려움을 만나게 되고,
둘째는 나중에 하나님께 혼납니다.
먼저 인생에 어려움을 만나게 되는 것을 잠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를 잘못 믿게 되면, 삶이 힘들어지는데,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기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마친 기차역에 부산으로 가는 기차가 있고, 목포로 가는 기차가 있었습니다.
자신은 부산으로 가려고 하는데, 착각을 하고, 목포로 가는 기차를 타 버린 겁니다.
같은 선로를 따라 열심히 기차를 달립니다.
기차를 타고, 찬양도 부르고, 기도도 하고, 말씀도 듣고, 전도도 하고, 그러면서 열심히 기차를 타고 갔는데, 도착한 곳은 어딥니까?
목포인 겁니다.
여러분, 얼마나 황당합니까?
왜 목포에 내가 왔지?
왜 목포에 오기는요.
목포행 기타를 탔으니까 목포에 온 거지요.
그래서 부산으로 가려고, 고생고생하며 다시 차를 타고 부산으로 갔습니다.
처음부터 잘 탔으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았는데,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① 왜 고생을 하느냐?
우리가 예수를 잘못 믿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믿음이 있습니다.
신앙의 가장 중심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이해하지 못하면, 교회를 아무리 다녀도, 더 헛것입니다.
오늘 그래서 부활절을 맞아서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것이고, 여러번 제가 강조해서 말씀 드린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시면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시고, 믿음을 다시 다 잡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지난 주가 고난 주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고난 주간 보낸다고, 열심히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서 고생들을 했습니다.
물론, 우리 교회는 제가 일부러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금식도 하고, 절제도 하고, 예수님의 고난에 어떻게 동참할까 생각하면서 열심히 종교적인 활동을 합니다.
예배도 엄청나게 많이 드리는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② 예수 믿으면서, 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까?
여러분, 사실 고난 주간이라는 것이 카톨릭에서 만들어낸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죠.
고난주간, 사순절... 이런 것.
이것은 성경에는 없는 겁니다.
사순절. 넷 사에,,, 열흘 순. 자를 쓴 겁니다.
즉, 40일을 뜻합니다.
예수님 돌아가시기 전 40일.
이것을 사람들은 고난의 시기라고 보면서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면서 고난에 동참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고난에 동참하라고 했습니까?
물론, 성경에는 이런 구절들이 있습니다.
[딤후 2: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빌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4: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즐겁게 여깁니다.
스스로 고난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고난이 오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아... 내가 고난을 받는 것은 예수를 잘 믿고 있는 증거이다.
왜요? 고난을 받으라고 하니까.
그런데, 저는 참 이상한 것이 있더라구요.
그렇게 고난이 좋으면, 왜 사람들은 고난을 당할 때, 고난에서 벗어나려고 합니까?
벧전 4장 13절.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그렇다면, 고난 당할 때, 여러분은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을 당하면, 고난에서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면, 저나 여러분이나 아니 신앙인들이
다 잘못 신앙 생활하는 겁니다.
아프면, 아픈 그대로 고난을 당하니까.
아픔에서 벗어나지 말고,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괴롭고 힘들어도, 그냥 참고, 인내하고 견디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벗어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게 정상입니까?
그런데, 하물며, 고난 주간이라고 스스로 고난에 뛰어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금식하고, 못으로 몸을 찌르면서 몸을 괴롭게 합니다.
왜요? 그것이 예수님의 고난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게 정상입니까?
예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이 그것입니까?
이것은 다 십자가를 오해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우리가 고난 당하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보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치유를 위해서 채찍에 맞으셨고, 우리의 아픔을 대신 담당하기 위해서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사 53: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의 모든 고난, 허물, 질병, 저주.
이 모든 것 때문에 너무나 우리가 힘들어서 죽을 것 같으니까.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난, 저주, 질병을 없애기 위해서 이천년 전에 십자가를 지셨는데, 우리는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내가 다시 지려고 한다는 겁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이것은 내가 믿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무엇을요?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고난, 저주, 질병, 죽음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음을 믿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고난을 당합니다.
너무나 힘이 듭니다.
그런데, 어떤 생각을 하냐 하면, 나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다.
맞습니까? 틀립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내가 져야 할 십자가를 나 대신에 예수님이 대신 지셨는데, 왜 또 내가 십자가를 져야 합니까?
여러분, 예수님은 예수님이 가지신 죄 때문에 십자가 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이유가 없습니다.
③ 죄가 없는데, 왜 죄의 형벌인 십자가를 집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십가가를 지셨다는 겁니다.
그 이유가 바로, 내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해결하신 겁니다.
그러면, 내가 십자가를 져야 합니까?
아니면, 십자가를 지지 않아도 됩니까?
여러분, 우리는 십자가를 져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내 죄를 위해 십자가를 대신 지셨다.
그래서 나는 십자가를 질 필요가 없다. 아멘~~~.
vs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래서 고난 주간은 예수님의 고난주간이지 나의 고난주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활절이 가까이 오면, 감사하는 마음이 들 끓어야 합니다.
아... 내가 받아야 할 저주를 예수님을 대신 받으셔서 내가 지금까지 저주를 받지 않고 살아 왔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주님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④ 그렇다면, 고난이 여러분에게 찾아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난, 저주, 질병이 왜 우리에게 찾아옵니까?
그것이 바로 율법의 저주입니다.
율법의 저주가 무엇입니까?
vs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않는 자를 말합니다.
이것이 율법의 저주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다 행하라는 겁니다.
하나라도 빼놓지 말고, 다 행해라는 겁니다.
대표적으로 십계명.
또한 성경의 명령.
이것을 다 행하지 않으면, 다 저주에 걸리는 겁니다.
100개를 잘 했는데, 실수로 한 개를 못해도 그는 저주에 걸리는 겁니다.
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저주에 걸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율법을 완전하게 다 행합니까?
말 실수 하나만 잘못해도, 그것이 저주가 됩니다.
성경은 우리가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라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구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으라구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무엇을 믿으라구요.
예수님이 내 대신 십자가를 지셨다.
즉, 율법의 저를 대신 다 짊어지셨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율법의 저주를 당할 필요가 없다.
이 사실을 믿으라는 겁니다.
그래서 부활절을 맞이하는 성도님.
이렇게 외치셔야 합니다.
내 죄를 예수님이 다 당하셨다.
내 저주, 질병, 고난을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해결하셨다.
나는 그래서 더 이상 고난, 저주, 질병을 당할 필요가 없다.
아멘~~~...
이것을 믿고, 고백하셔야 합니다.
이것을 못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휴... 힘들어서 어떻게 하니?
괴로워 죽겠어.
예수 믿는 것이 힘들어.
사람이 다 아프고 그런 거지.
실패하면 어쩌나. 잘못되면 어쩌나.
외롭고 쓸쓸하고, 앞으로 병들어서 고통 당하면 어쩌나.
이런 말을 합니다.
왜요?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못 믿는 불신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꾸 입에서 지옥에서 나오는 말을 내 뱉으니 지옥과 같은 삶을 사는 겁니다.
아닙니다.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주님이 내 대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저주, 질병, 가난, 고통, 나의 모든 짐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해결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이 다 해결하셨음을 선포하시는 일을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겁니다.
자... 봐라.
내가 너의 모든 저주를 다 해결하고 이렇게 내가 다시 살아났다.
그래서 이것을 믿어야 한다.
십자가와 부활은 바로 이것을 뜻하는 겁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죽으시기만 했고,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왜요?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늪에 빠졌는데, 그냥 놔두면 죽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을 살리려고 같이 뛰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둘 다 죽었다.
살아나지 못했다.
그러면, 살리려고 뛰어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둘 다 죽었는데, 너무 허무한 겁니다.
그런 이야기 많죠.
동생이랑 물에서 놀다가, 갑자기 동생이 물에 빠져서 죽으려고 하는데, 형이 동생 구하려다가 둘 다 익사하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얼마나 비통합니까.
마치 예수님이 부활하지 못했다면, 예수님이 나의 저주를 담당하고 죽으셨는데, 그것이 끝. 얼마나 비통합니까.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라 부활하셨다는 겁니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모든 저주를 예수님이 담당하셨기에 내가 예수님을 믿으면, 나의 저주가 사라지고, 다시 부활의 영광으로 나타나는 구나.
이것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신이 납니까...
이것이 바로 부활의 영광입니다.
지금 제가 이 땅에서의 영광만 얘기하기 때문에 별로 감흥이 없지만, 부활의 영광은 이것보다 훨씬 더 큰 영광입니다.
아마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영광이 기다립니다.
바로 천국의 소망입니다.
오늘 본문의 갈라디아서는 천국의 소망, 부활의 영광을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vs 9.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vs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다.
이것이 부활의 영광입니다.
⑥ 아브라함이 무슨 복을 받았습니까?
땅의 복과 하늘의 복입니다.
땅의 복은 장수와 물질의 복과 자녀의 복과 건강의 복입니다.
하늘의 복은
[히 11: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땅의 복은
[창 24:1]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히 11:11,12]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
[히 6:14]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하늘의 복과 땅의 복.
이것이 아브라함의 복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영광입니다.
즉, 예수님을 잘 믿으면, 이러한 복이 우리에게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잘못 믿으면, 우리가 이 땅에서 고생고생하면서 어찌어찌하다가 천국에 가는 겁니다.
천국에 가서도 하늘의 상급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왜요?
십자가와 부활을 잘 못 믿었으니까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두 가지입니다.
말씀 암송하세요.
그리고 부르짖어 기도하세요.
그것이 바로 깨어 기도하는 겁니다.
그리고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나의 저주, 질병, 가난을 다 해결하셨다.
나는 더 이상 가난, 저주, 질병을 당할 필요가 없다.
따라 해 봅시다.
그리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고백하시면서 부활절을 맞이해서, 내게 이렇게 큰 은혜를 주신 예수님께...
오늘 감사예물을 주님께 기쁨으로 마음껏 드리시면서
여러분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늘 십자가와 부활을 마음에 새기시면서 예수님을 똑바로 바라보고, 믿음 생활 잘 해 나가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