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4장 1~10절]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ㄱ)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우리가 늘 마음에 새기면서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나를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그렇기에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셔야 합니다.
내가 섬기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나의 하나님 아버지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나는 만왕의 왕의 자녀이다.
아멘~~~...
그러면, 만왕의 왕의 자녀는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합니까?
사실, 우리는 만왕의 왕의 자녀가 어떠해야 하는지 절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고양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고양이에 대해서 질문을 하면, 대답할 수 있습니까?
없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자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삶을 사십시오. 하면,
①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삶을 삽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내가 교회에 다니는데, 어떻게 하면, 교회 다니는 사람으로서 올바르게 살지, 어떻게 하는 것이 제대로된 신앙 생활이야.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예수 믿는 사람을 욕합니다.
교회를 불신하고, 욕합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을 욕하고, 교회를 욕하면, 싸우시지 말고, 그냥, 아무 말하지 말고, 죄송합니다... 라고 하십시오.
그것이 다 우리들의 잘못입니다.
왜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제대로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왜요?
내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인데,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어떤 분들이냐?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는 것을 본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는 것을
목사를 통해서 봐야 하느냐?
장로를 통해서 봐야 하느냐?
권사를 통해서 봐야 하느냐?
집사를 통해서 봐야 하느냐?
다 틀립니다.
절대로 사람을 봐서는 모릅니다.
누구를 봐야 합니까?
바로 이 땅에서 가장 완벽하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삶을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봐야 합니다.
②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을까요?
그것을 보면, 내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교회 좀 다니면,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는지 좀 압니다.
왜요? 설교를 듣거든요.
성경을 읽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단지 지식 뿐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사신 것처럼 그럼, 나도 그렇게 살아야 정상입니다.
왜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었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처럼 살아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도 성경을 통해서 보았고, 나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왜?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지 못합니까?
그 이유가 도대체 뭡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약 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 싸우고 다툽니다.
시기하고, 용서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싸우고 다투셨습니까?
시기하고 용서하지 못하셨습니까?
아니지요. 예수님은 싸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시기하거나 용서하지 못하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온유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우리도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 찾기가 힘듭니다.
오늘 본문 야고보서에도 보면,
[약 4: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이 말씀은 온유하고 겸손해라는 뜻이거든요.
그런데, 예수 믿는 우리는 싸우고 다툽니다.
미워하고 질투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삶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잘못된 삶이라는 것을 모르는데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싸우고 다투고 나서, 이것이 잘못됐다고 알고 후회하지만, 또 싸우고 다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속해서 반복이 됩니다.
그러면, 언제 온유하고 겸손하게 됩니까?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저는 안싸우는데요.
저는 다투지 않는데요.
정말 그렇습니까?
화 낸 적도 없고, 시기도 않하고, 마음이 언잖으신 적이 한 번도 없으십니까?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그런 분은 정말 신앙의 최절정이 오르신 분이거나 아마 자신을 속이는 분일 겁니다.
왜냐하면, 싸움이나 시기나 미움이나 짜증이나 이런 것들이 다 어디서 나오는 것들인가 하면, 우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약 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즉, 이 말은 우리 몸에 이미 싸우는 정욕이 태어나면서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다 정욕이 있습니다.
여기서 정욕은 헬라어로. “헤도네” 인데, 이것은 몸을 즐겁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맛있는 것을 먹는 것,
오감에 즐거운 것,
쾌감을 주는 모든 것.
이런 것들이 다 헤도네...
즉 정욕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다 정욕이 있습니다.
배가 고픈 사람은 밥을 먹어야지요.
배가 부르면, 즐겁습니다.
이것은 저나 여러분이니 당연한 겁니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인간은 다 똑같습니다.
그것을 여기서는 이렇게 표현을 한 겁니다.
헤도네... 즉, 정욕입니다.
그러면, 정욕이 나쁜 것이냐?
천만의 말씀이요.
정욕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먹을 것을 먹을 때, 맛있는 것 먹는 것.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사과를 하나님이 만드셨잖아요.
그리고 사과를 먹으면, 맛있잖습니까.
그게 왜 나쁜 겁니까.
잠을 자는데, 따뜻하고 편히 자는 것.
그것이 왜 나쁩니까?
여러분, 침대는 좋은 것 사서 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침대에 가시 박은 방석을 깔고 자야 합니까.
아니 잖아요.
좋은 침대 사는 것이 정욕이라고 생각하고, 나쁜 것으로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그래서 금욕주의는 신앙의 적입니다.
신앙 생활 잘하기 위해서 절제하고, 아끼고, 절약하고, 아주 후진 것 사용하고, 재활용하고, 중고품 사서 쓰고, 먹을 것 못 먹고, 옷도 찢어진 것 겨입고 겨입고, 20년 30년, 대를 물려주면서 입도록 하는 것.
그것이 경건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신앙 생활 잘하시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가난의 저주입니다.
정욕이 나쁜 거면, 즉, 몸의 즐거운 것이 나쁜 것이면, 하나님이 맛있는 사과를 왜 만드셨습니까?
하나님이 왜 물고기를 만드시고, 먹게 했습니까?
하나님이 왜 소고기를 먹을 거리로 주셨습니까?
먹고 즐거운 것은 절대로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정욕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쁜 정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뭡니까?
싸우는 정욕입니다.
그것이 나쁜 겁니다.
③ 싸우는 정욕. 이것은 도대체 뭡니까?
자... 성경의 예를 한 번 들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복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는 조카 롯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버지의 집을 떠나 가나안으로 갈 때, 조카 롯도 함께 삼촌인 아브라함을 따라 갔습니다.
삼촌과 함께 있다 보니, 아브라함이 복을 받을 때, 롯도 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롯이 거부가 되었습니다.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겁니다.
정욕... 즉 맛있는 것을 먹고, 최고로 좋은 것을 입고 멋진 인생을 살았다는 겁니다.
거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무슨 문제가 발생합니까?
자.. 봅시다.
창세기 13장 1절에 보시면,
[창 13:1]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2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했지요.
하나님이 주신 겁니다.
풍부한 것은 복입니다.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이 풍성하게 복을 주실 겁입니다. 아멘...
[창 13:5~8]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소유가 많으니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풍부한 것은 좋은데, 왜 다툼이 일어났습니까?
그것이 바로 싸우는 정욕입니다.
사람이 많고, 풍성하면, 여유로워야 하는데, 이상하게 싸우더라구요.
조카 롯이 삼촌한테, 삼촌 죄송해요.
제가 양을 좀 덜 먹일께요.
갈라서지 말고, 함께 좋게 살아요...
그러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제사를 지내다가 가인은 아벨을 돌로 쳐 죽입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벨에게 가서 너는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를 드렸니. 내게 알려다고, 나도 그렇게 드리게...
그렇게 물어보고 좋게 지내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시기와 분노가 일어나서 동생을 쳐 죽입니다.
가인이 뭐가 부족해서 그런 겁니까.
그 당시 필요한 것. 있을 것 다 있는데...
사실, 여러분, 가난하신 분들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이 왜 안주시겠습니까...
문제는 다투는 정욕이 마음에 생긴다는 겁니다.
좀 더, 좀 더, 좀 더 있으면, 뭐 하게요?
좀 더 편하게, 좀 더 많이 가질려고 싸우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욕심을 내어도 갖지를 못하는데 말입니다.
돈을 좀 더 벌어오면 좋지요.
그런데, 그 만큼만 벌어도 좋은 겁니다.
왜요? 하나님이 또 주시면 되니까요.
그런데, 더 벌려고 해요.
즉, 욕심을 내는 겁니다.
욕심을 내서 가질 수 있으면 얼만 좋습니까?
그런데, 욕심을 내 봤자, 서로 마음만 상하지 가지 못합니다.
더 가질 수가 없습니다. 갖지 못하니까. 싸우는 겁니다.
그런데, 갖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이 가진 그릇의 한계 때문에 그렇습니다.
돈도 여러분 인격입니다.
돈도 자기 그릇이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려면, 자신의 돈의 인격의 그릇이 커지면 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국 그릇이 있는데, 아무리 국을 부어도, 그릇의 크기만큼만 차지 더 많이 붓는다고, 더 많이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큰 다라이 같은 사람은 아무리 부어도, 계속 부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 말씀을 하는 겁니다.
욕심을 내어도 갖지 못한다.
왜요?
그것이 바로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작은데, 어떻게 가질 수 있느냐 는 것입니다.
싸우는 정욕이 왜 믿음의 문제이냐 하면...
[약 4: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④ 싸우는 이유가 뭡니까?
그리고 얻지 못하는 이유가 뭡니까?
여기서 보니까.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즉, 기도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구하면 주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구하지 않습니까?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믿음의 문제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도대체 어떤 분이십니까?
창조주, 만왕의 왕이십니다.
나는 만왕의 왕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왕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주십니까? 안주십니까?
주십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그런데, 구하지를 않습니다.
왜요? 믿지 못하니까요.
구해도 안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계시까, 기도 안하지요.
기도하면 주시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기도 하겠습니까? 안하겠습니까?
아니... 참.. 답답한게...
은행에 돈이 있다면, 은행 가면 돈을 찾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럼, 왜 돈이 없다고 싸웁니까?
은행에 가서 찾으면 되는데... 정말 웃긴 일이지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그렇게 보시는 겁니다.
기도하면, 주겠다는데, 왜 기도 안하고, 싸우느냐?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⑤ 또 문제는 기도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은 왜 응답을 못 받느냐?
[약 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기도해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정욕으로 쓰려기 때문입니다.
정욕은 나쁜 것이 아닌데, 여기서 문제는 쓰려고... 라는 단어입니다.
쓰려고... 이것은 헬라어로. “다파나오” 인데, 이것은 다 써버린다는 겁니다.
어느 부자의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가져가서 허랑방탕하게 다 써버리는 것.
[눅 15:13,14]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바로 이겁니다.
다 써버리는 것.
누구를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다 써버리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부자 농부에 대해서 말씀 드렸지요.
[눅 12:19~21]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한 자.
왜요? 자기를 위해서 다 써버리니까.
그것이 바로 정욕으로 쓰려고...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기도해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잘못 구한 기도입니다.
⑥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도 응답하시고 주시느냐?
첫째는 재물을 얻을 그릇을 크게 해야 하고,
둘째는 주님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재물을 얻을 그릇을 크게 하기 위해서는 암송해야 하고,
주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기에 여기 까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어째든.
말씀 암송하고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엄청난 일들이 점점 생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온유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방법은 깨어 기도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말씀 암송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악한 영의 권세를 깨뜨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부요함이 임하고, 풍성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