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의미_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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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5장 7~10절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다음 다음 주가 부활주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절기가 부활절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믿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것처럼
나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모든 믿음은 헛것입니다. 
이 말씀은 부활절에서 설교하도록 하겠습니다. 

- 오늘은 부활절을 앞에 두고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부활 전에는 반드시 고난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고난과 부활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① 왜 고난과 부활은 함께 있어야 합니까? 

 

그것은 고난의 의미를 살펴 볼 때에 확실하게 드러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고난의 의미를 알아 보면서 내가 고난을 통해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이 오시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그런 고난 후에는 반드시 부활이 따른다는 사실에 감사하시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여러분의 집에서 가장 힘든 사람이 누구입니까?
쉬운 예로, 누가 가장 병원에 입원을 많이 했습니까? 
누가 가장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했습니까? 

저희 집에서는 우리 큰 딸이 병원에 다니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저도 물론, 맹장 수술하면서 입원하기도 하고, 폐가 안 좋아서, 약을 먹기도 하고 했습니다. 
둘째 딸도 폐렴이 와서 어렸을 때, 입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째든 사람들은 질병을 통해서 많은 고난과 고통이 따릅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가정마다 질병이 없는 사람이 없고, 병원 한 번 안 가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왜 그런 고난이 오는 것일까요? 

또 우리 주위에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힘들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저희 자녀들은 학원에 보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둘째 딸이 나는 피아노학원 밖에는 학원 다녀 본 적이 없다고 하니까 자기 친구들이 너는 외계인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런 학원이 즐거운가 하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즐겁지도 않은 학원에 왜 다닙니까?
엄마의 강압에 의해서입니다. 
공부 못하면, 혼이 납니다. 
물론, 저희 집은 공부 못해도 혼내지 않습니다. 
시험지에 이름만 잘 적으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름이 없어 시험지가 바뀌면, 자기의 낮은 점수로 인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게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이름은 아주 확실하게 잘 적고 시험을 칩니다. 
어째든 아이들은 부모에 의해서 공부하라고 하면서 엄청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고난입니다. 

여러분이 회사에 취직을 하거나 새로운 환경에서 사람들은 만나면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잔소리를 심하게 하던지, 나의 약점을 자꾸 지적한다든지 헛듯던지, 비난하던지, 무시하던지 어째든 여러 모양으로 나를 힘들게 합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을 우리는 원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원수라고 하면, 나를 치명적으로 위협과 피해를 준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그들도 원수이지만, 성경에서는 단순히 우리를 괴롭히고 불편하게 하는 존재입니다. 
그 원수는 가까운 사람이나 가족일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0:36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10: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성경에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나를 괴롭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렇게 나에게 원수가 있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는데, 그 사람을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 고 합니다. 
나에게 고난을 주는 사람,
나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
나를 괴롭히는 사람,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여러분,,, 그런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사실 사랑하기가 힘듭니다. 
그것이 신앙 생활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나의 생각이 충돌하는 것입니다. 
누가 옳습니까? 
원수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된 것입니까?
아니면, 원수를 어떻게 사랑하냐고 따지는 자신의 생각이 옳습니까? 
나는 도저히 원수를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신이 잘못된 것입니까? 

그래서, 오늘 우리는 고난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고난이 있는데, 그런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② 하나님이 아들이신 예수님이 왜 고난을 당했습니까?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서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막14:64,65] 그 신성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65)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예수님의 얼굴에 침 뱉고,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싸다구를 때립니다. 
예수님이 무슨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질렀는데, 왜 그런 수모를 당해야 했습니까? 
그래도,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고, 그대로 당하셨습니다. 

또한 빌라도 총독 앞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막15:16~20]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가시관을 씌우고, 갈대로 머리를 치고 침 뱉으며, 희롱을 했습니다. 
그리곤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가서 십자가에 못을 박았습니다. 
왜 그런 고난을 당하셔야 합니까? 
다음 주가 고난 주간인데,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사역하시면서,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귀신에게 고통 당하는 자를 고쳐주시고, 병든 자를 치유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어서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고통을 당하셔야 했습니까?
그 이유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vs 8~9.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예수님도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야만 했습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특색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③ 순종을 배워야 하는데, 그 순종을 어떻게 배웁니까? 무엇을 통해서 배웁니까?

 

고난을 통해서 배웁니다. 

그럼, 이렇게 질문할 수가 있습니다.
순종이 뭐가 그리 중요한데, 그렇게 고난을 당하면서까지 배워야 하는가? 
순종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왜냐하면, 순종은 천국의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왕이시며, 왕이신 하나님 앞에서 모든 피조물들은 순종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입니다. 
또한 순종하며, 낮은 마음으로 있을 때, 하늘의 보화가 계속해서 내려옵니다. 

그런데, 그 질서를 누가 깼습니까?
마귀가 깼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보좌를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즉, 순종을 거부하고, 높아지려고 했습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마귀가 하와를 꼬셨습니다. 

결국, 하와도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말씀을 거부했습니다. 
그것은 교만입니다.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마음입니다. 
사단은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을 높아지게 만듭니다. 
사람이 높아지게 되면, 그 즉시로 그는 지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사단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높아지는 즉시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쫓겨났습니다. 

사람도 자신이 높아지는 즉시로, 천국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사단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순종하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④ 반면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할까요?

너희들은 순종해라... 이렇게 요구하시는 겁니다. 
그 본은 누가 보여주셨는가 하면, 예수님이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도 순종함으로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순종하는 마음으로 바뀌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순종하는 마음이 되게 만드는 도구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고난이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재앙을 주면서, 하나님이 즐거워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훈련이며,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 순종의 사람, 천국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낮추시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 과정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것이 바로 원수이며 대적자이며, 나를 괴롭히는 사람입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힘들어 합니다. 
원망도 합니다. 
왜 저런 사람이 내 주변에 있어서 나에게 고통을 주느냐 하고 속상해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우리 영혼에 정말로 도움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 그들이 바로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나를 평안하게, 좋게 대해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오히려 나의 영혼을 넘어지게 하고, 나를 실족하게 하는 존재들입니다. 
나를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존재들이 어쩌면 나를 잘 대해주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태어나면서, 이미 높은 마음, 교만한 마음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나를 잘 해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도 얼마나 영악한지 모릅니다. 
아이들도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을 쫓아가지 자기를 미워하고, 자기 마음대로 해 주지 않는 사람을 절대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기적입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이런 이기적인 마음이 작동합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 들어주면, 좋다고 교회 나오지만, 하나님이 나를 좀 불편하게 하면, 교회고 나발이고 다 떼려치웁니다. 
싸우고, 원망하고, 화내고, 떠나가 버립니다. 
그렇게 사람이 태어났습니다. 

 

자, 그런 사람은 천국에 합당한 사람일까요? 아닐까요? 
절대로 그런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사랑해서 우리를 천국으로 이끄시기를 원하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원하시 않으십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교만한 마음에서 겸손한 마음, 높은 마음에서 낮은 마음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이 천국과 같은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⑤ 그럼, 겸손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낮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 주위에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두십니다. 

정말로,,, 우리는 생각하기를 “저 인간만 없으면 행복할 텐데...” 하는 사람을 주위에 두십니다. 
저 원수로부터 해방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을 피해서 도망가려고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도망가는데 성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뭐... 다 떼려 치우지...
내가 이 교회 아니면 뭐 갈 교회가 없는지 알어.
내가 이 직장 아니면 뭐 갈 직장이 없는지 알어.
내가 이 집을 나가던가 해야지. 도저히 못 살겠어...
내가 이혼을 해야지. 이렇게는 도저히 못 살겠어...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있습니다. 

그런 원수로부터, 나를 괴롭히는 사람으로부터 도망치는데 성공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벗어나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
다른 곳으로 가도 또 다시 대적자들과 원수 역할을 하는 상대를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 있는 곳에서 벗어나면, 참 행복할 것 같고, 참 평안이 올 것 같고, 이제는 쉴 수 있고, 안식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이 착각입니다. 
어디에서나 대적자는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서, 직장이 너무 힘들어서 그 직장을 떼려치우고 다른 직장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사람만 바뀌었지.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또 있습니다. 

남편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해서 견디지 못하고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합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삶은 여전히 힘듭니다. 
새로운 남편도 나를 역시나 고통을 줍니다. 
대상자만 바뀌었지 대적자와 원수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데, 하나님이 왜 이런 경험을 허락하십니까? 
남자가 다 나빠서 그럽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나만 미워해서 그럽니까?
아니면, 내가 재수가 없게 태어나서 그런 것입니까? 

물론, 그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가르치시기 위해서입니다. 
무엇을 가르치십니까? 순종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배우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대적자를 허용하시고 인도하시는 겁니다.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내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이렇게 배웠습니다. 

자... 그럼, 순종을 해야하지 않습니까?
사랑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내가 순종하는지, 사랑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내가 진실한 마음으로 순종하는지, 사랑하는지, 섬기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렇지 못한 환경, 그렇지 못한 사람을 만나서, 순종하고, 사랑하고, 섬길 때, 그것이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인 진리를 하나 알 수가 있습니다. 

모든 문제는 내 안에 있다. 
따라 해 봅시다. 모든 문제는 내 안에 있다. 

우리는 환경이 나쁘기 때문에, 
가정이 나쁘기 때문에
사람이 나쁘기 때문에
직장이 나쁘기 때문에

내게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대적과 재앙과 고통과 고난을 끌어들이는 요소는 모두 내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내 안의 상태, 내 마음과 영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회복의 시작입니다. 

대적을 통해서, 원수를 통해서, 고난을 통해서 내가 낮아지고, 하나님 앞으로 더 나아가게 합니다. 
하나님 밖에는 의지할 분이 없어서, 하나님 한 분 외에는 해결할 분이 없어서 내가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눈물로 주님 앞에 엎드리고, 낮아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의 참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가 낮은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적들, 원수들,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낮아짐과 영혼의 성장을 위해서 사용하시는 귀한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내가 높아져서 대접받기를 원하는데,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들로 인해서 이제는 내가 섬겨야 할 자리로 옮겨 가게 됩니다. 
자기를 건디리거나 무례하게 대하거나 비난 할 때, 불쾌하거나 화를 냈지만, 이제는 그런 도구들을 통해서 겸손하고 온유하고, 참는 것을 배웁니다. 

그래서, 고난과 핍박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나를 드러내는 것들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지, 아직도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하는 이기적인 사람인지를 나타냅니다. 

고난을 당하면서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참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내 속에 어떤 것이 들어있는지 하나님이 알려주시고자 하는데, 나는 계속 그것을 거부합니다. 
내 속의 교만,

내 속의 거만한,

내 속의 이기적인 것,

내 속의 자랑하려는 것,

내 속의 더러운 욕심,

내 속의 높아짐, 

내 속의 자랑,
이런 것들이 가득차서, 내가 지옥에 속한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은 고생 고생만 하고,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계속 남을 원망만하고, 불평만하고, 짜증만 내고, 피하기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자기 속에 계속해서 고난을 끌어들이는 요소가 남아 있기에 그 사람은 어디를 가나 고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고난이 왔을 때, 이런 모습을 드러낸다고 해 봅시다. 
새벽기도를 다니지 않던 사람이 새벽 기도에 나오고, 수요예배, 오후예배도 나오지 않던 사람이 예배에 참석하면서 이렇게 기도하면서, 주님 앞에 엎드립니다. 

주님... 대적은 내 안에 있습니다. 
원수는 내 안에 있습니다. 
저 괴롭히는 사람이 곧 나의 모습입니다. 
나의 참 모습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나 대신 희생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 저 원수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내가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내가 순종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직장 상사에 순종하고, 남편에게 순종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살겠습니다. 
이렇게 깨어져서, 낮아지게 됩니다. 

⑥ 자, 그렇게 낮아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겠습니까?

 

이제는 대적이 필요가 없어집니다. 
대적은 자신의 임무를 완성한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우리 근처에 얼쩡거리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도, 나를 못대게 구는 사람이 항상 있어 왔는데,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겸손을 구하고, 순종하고, 낮아지고, 사랑하려고 할 때,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었기 때문에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없어도 됩니다.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 말씀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순종으로 완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 굴복하고, 훈련을 통과하게 됩니다. 
오직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며, 피하지 않고, 나의 권위자에 순종하고, 복종합니다. 
어떤 환경이든지 감사하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더 이상 광야와 같은 메마르고 험난한 곳에 있지 않아도 됩니다. 
대적들이 필요가 없어집니다. 

이것이 고난이 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꼭 깨달음이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굴복될 때 까지 우리의 대적은 여전히 존재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미워하는 사람, 순종하기 싫어하는 사람,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으로 인해서 여전히 분노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더 많은 대적자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원수들은, 고난은, 나를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원수를 통해서 우리는 낮아지게 됩니다. 
훈련을 통과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훈련을 통과하시기 바랍니다. 
내 주변에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결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결재하에 내 주위에 생기는 것입니다. 

부디 이 인생의 고난의 훈련을 통과하셔서
하나님이 주시는 천국의 풍성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천국은 오직 낮고 겸손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벧전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이제는 불평을 버리고, 이제는 짜증을 버리고, 겸손하게 무슨 일이든지 감사하시고, 참고 견디십시오. 그리고 순종하십시오.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십시오.
내게 겸손한 마음을 달라고, 내게 낮은 마음으로 순종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내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주님께 매달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내 주위에 원수가 사라지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영적인 원리를 잘 깨달으시고 여러분의 삶에 복된 천국이 풍성하게 이루어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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