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장 1~12절]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1)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2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2023년 성탄절을 맞아서 예수님이 탄생하신 기쁨이 성도님들의 가정과 삶에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님을 어떻게 경배해야 하며 우리는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잠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2000년 전 헤롯 왕 때에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방문합니다.
vs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① 여기서 우리는 세가지 정도를 해결해야 합니다.
첫째는 동방이 어디인가?
둘째는 박사들은 누구인가?
셋째는 왜 이들은 예루살렘에 왔는가?
동방은 어디입니까?
사실, 동방이 어디인지는 모릅니다.
추정을 해 보면,
아마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이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그 때가 예레미야 시대이며, BC. 605년 정도 됩니다.
그 당시 다니엘도 잡혀서 바벨론으로 가며, BC. 587년 경에 남유다가 멸망을 합니다.
그 후에 70년 만에 포로로 잡혀 갔던 사람들이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옵니다.
그것을 예언한 사람이 바로 예레미야입니다.
[렘 25:11~12]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1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
그래서 정확히 70년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오지만, 유대인들 중에서 돌아오지 않고 바벨론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벨론은 지금으로 치면, 이라크의 바그다드에 위치해 있습니다.
물론, 박사들이 동방이라고 하는데, 바벨론에 거주했는지는 정확이 모릅니다.
그러나 대충 추정해 보면 그렇습니다.
두 번째 박사들은 누구입니까?
박사들은 아마 별을 연구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오늘날 천문학자들을 이야기 하겠지요.
물론, 그 당시에는 어느 한 분야만 연구하지 않고 모든 분야에 걸쳐 두루 공부를 했을 걸로 추정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별의 연구에 집중을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들에 내려오는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유대인인의 왕이 태어날 때, 큰 별이 떠오른다는 겁니다.
그리고 바벨론 포도 때 다니엘이 한 예언의 말씀이 있습니다.
[단 9: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예루살렘을 중건한 후, 즉 70년 포로기 후에 예루살렘이 재건이 됩니다. 그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별을 연구한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박사들은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왕이 태어날 것이다.
왕이 언제 태어날까?
이 예언은 실제할까?
하염없이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면서 왕이 언제 태어날까를 고대하던 자들이 바로 동방의 박사들이었습니다.
셋째 박사들은 왜 예루살렘에 왔습니까?
당연하지요.
그들이 고대하던 별이 어느날 갑자기 떠오른 겁니다.
늘 보던 별이 아니라 갑자기 떠오른 새로운 그 별.
그 별을 보면서 그들은 왕을 만나러 온 겁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렇습니다.
vs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유대인의 왕으로 나인 이가 어디 계시냐?
그들은 왕이라면 적어도 왕궁에서 태어날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화려하고 웅장하고, 높은 권력과 높은 지위, 엄청난 부와 명예를 지닌 집안에서 왕이 태어날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찾아온 겁니다.
그들이 예루살렘까지의 거리가 대충 추정을 해 보면, 이렇습니다.
2500년전 바벨론의 수도가 오늘날은 이라크 바그다드입니다.
바그다드에서 잘 닦인 도로로 해서 예루살렘까지 직선 거리로 약 천킬로 됩니다.
서울서 부산까지가 480킬로 되니까.
서울서 부산갔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거리 정도 됩니다.
옛날 선비들이 부산에서 서울까지 한달 정도 걸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박사들은 천킬로를 걸었으니 약 두달에서 세달 정도의 거리를 걸어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걸어갔다고 추정이 됩니다.
돌아가는 길까지 합하면, 약 육개월 정도의 도보 여행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것도 낮이 걷는 것이 아니라 밤에만 걸어야 했습니다.
왜요? 별을 보고 걸어야 했으니까요.
그들이 긴 여행을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유대인의 왕을 보고자 했던 겁니다.
그런데, 동방에서 보면 별을 쫓아 왔던 박사들은 화려한 예루살렘 왕궁에는 유대인의 왕, 만왕의 왕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화려한 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마음이 가난한 자들 속에 계십니다.
낮은 심령 속에,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자 속에 주님은 계십니다.
박사들의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의 왕궁의 학자들은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는지를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그들은 정확히 알았습니다.
vs 4~6.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유대 땅 베들레헴에 예수님이 태어날 것을 그들은 미가서의 예언의 말씀을 정확히 알았습니다.
[미가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그런데, 그들은 이 예언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실, 성경을 믿는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아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냥 농담이겠지 하는 생각들이 더 강합니다.
예언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당장 베들레헴으로 사람들을 파견해서 정말로 아기가 태어난는지 살펴보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언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아니 어디 그런 촌구석에서 그리스도가 태어나겠느냐?"
이런 생각을 했을 걸로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헤롯은 박사들에게 조용히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찾거든 자세히 알아보고 나도 경배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vs 7~8.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그런데, 헤롯이 정말로 경배하고자 했을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헤롯은 왕으로 태어난 아기를 죽이려 했습니다.
[마 2:13]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얼마나 악독한 왕인지 모릅니다.
사실, 사람들은 왕이신 예수님을 경배하지 않습니다.
예수에 대해서는 알아도 그들은 왕이신 예수를 죽이려 하지 경배하지는 않습니다.
헤롯왕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에 박사들이 예루살렘에서 나와서 베들레헴으로 가던 중 동방에서 보던 별이 갑자기 나타나 인도합니다.
그리고 아기가 있는 곳에 정확히 머무릅니다.
그리곤 박사들이 너무나 기뻐서 그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립니다.
vs 9~10.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박사들은 그들이 왕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것을 가지고 와서 예물로 드렸습니다.
그리곤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 버립니다.
vs 11.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이 말씀을 통해서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몇 가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② 첫째는, 우리가 얼마나 예수를 만나고자 하는가?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분은 함부로 대할 분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아무나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간절히 찾는 자에게 만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왜 오십니까?
예배 보러 오십니까?
아니면, 예배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러 오십니까?
우리가 다 같이 예배를 드리는 것 같지만, 우리의 마음의 자세에 따라서 예배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이 있고, 예배를 통해서 예수님을 못만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예배를 통해서 예수를 못 만나는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못 만나는데, 도대체 누구한테 예배를 드리러 나옵니까?
주일이니까 예배 한 번 봤다 이겁니까?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다면, 그 분들은 큰 실수를 하는 겁니다.
예배는 기본적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만남이 죽은 후에도 영원토록 이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예배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죽은 후에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영원토록 만나지 못하는 곳은 지옥 밖에 없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성탄절을 맞아서 동방 박사처럼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차 있으셔야 합니다.
[잠언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시편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이사야 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우리는 지금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주님을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지금 기회가 있을 때에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소망으로 가득차 있어야 합니다.
성탄절은 바로 왕되신 예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차야 합니다.
성경에서 동방의 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사건은 그냥 아무 의미없이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그 먼길도 마다하지 않고 예수를 찾으려는 열망을 보여주는 겁니다.
예수님을 경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3개월을 걸어서 아기 예수님 한 번 보고 다시 3개월 걸려서 집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해 봅십시오.
그것이 얼마나 웃긴 일입니까?
왜 이리 시간 낭비하냐... 뭐하러 가냐...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 만나는 것을 헛수고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예수님 만나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못 만난 사람이 더 인생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유는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살고 추구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며, 행복이며, 만족입니다.
③ 왜 돈을 벌고, 왜 직장 생활하며, 왜 즐거움을 찾습니까?
결국, 사랑하기 위해서, 행복하기 위해서, 자신의 삶이 만족하기 위해서 아닙니까.
그런데, 만족합니까?
아니요. 절대로 만족할 수 없고, 만족이 안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참된 만족을 위해서 찾아나섭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그것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결론에 도달한 자들이 말합니다.
신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아직 맛보지 않아서 그렇지 예수님을 한 번 만나고 맛보면, 그것은 절대 평화, 절대 만족, 절대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 평화, 기쁨, 만족, 사랑과 행복
이것은 오직 예수님 안에만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우리가 찾던 모든 것들이 다 그 속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님 만이 생명이시며, 우리의 유일한 사랑이 되십니다.
그 예수님을 간절히 찾는 자에게 예수님은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이 번 성탄절을 기회로 여러분 마음에 동방의 박사들처럼, 오직 예수님만 간절히 찾는 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④ 두 번째로, 예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을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아는 것이 곧 예수를 믿는다고 착각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전혀 다릅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보통 사람들은 아는 것으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수를 한 번도 안들어 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물론, 세상의 정보가 끊어진 아주 외딴 곳은 아직 예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겠지만요.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예수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알아요.
예수가 누구인지.
크리스마스. 이것이 예수 탄생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헤롯도 베들레헴에 유대인의 왕, 그리스도가 태아난 것을 알았습니다.
그 당시 서기관들과 모든 대제사장들도 알았습니다.
성경에 무슨 내용이 기록되었는지 알았습니다.
주일 학교 한 두 번 다닌 사람들도 성경의 하나님, 예수님, 압니다.
그런데,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알면 뭐합니까?
믿지는 않는데...
믿으면, 반드시 믿는대로 행동을 합니다.
알지만, 믿지 않으면, 절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매주 교회에 나와야 되는 것은 알아요.
그런데,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믿지 않는 겁니다.
십일조 내야 하는 것은 알아요.
그런데, 십일조를 내지 않아요.
그러면, 그 사람은 십일조를 내라는 성경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겁니다.
범사에 감사해라는 것을 알아요.
그런데, 그는 범사에 감사하지 않아요.
그러면, 그는 성경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유일한 나무 다리가 있는 겁니다.
사람들은 다리가 튼튼하다는 것을 알아요.
어떤 사람은 그 나무 다리로 건너가지 않아요.
왜요? 무너질까봐요.
그러면, 그 사람은 다리가 튼튼하다는 것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는 겁니다.
알고, 믿으면, 건너가겠지요.
헤롯은 왕이 태어남을 알았지만, 그는 박사들과 함께 왕에게 경배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왜요? 믿지 않았으니까요.
우리는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며, 왕이심을 압니다.
2023년도 성탄절을 맞아서
그렇다면, 그 분께 최고의 경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믿는 자의 모습입니다.
⑤ 마지막으로, 박사들은 최고의 선물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사람은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마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하나님 앞에서 물질을 드리는 것을 보면, 그 분이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주님께 드리는데, 벌벌 떠시는 분도 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는 수백만원이 안아까워도 주님께 드리는 감사헌금은 만원도 벌벌 떨면서 드려야 되나 말아야 되나.
이런 고민하는 분도 있습니다.
밥 안끼 요즘은 만원인데, 주정 헌금. 천원 드리는 분.
얼마나 인색한지 모릅니다.
천원도 없어서 못드리시는 가난하신 분들이 있다면, 주님이 정말로 그 마음만은 받으실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정말 잘 믿으면, 하나님의 복을 안 받을 수가 없는데,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도 모르고 주님께 최고의 것을 드릴 수 없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왜요? 그 사람은 결국 가난하게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게 되는 이유는 심는 법칙에 따라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내가 심지 않는데, 거두려고 하는 분이 없기 바랍니다.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둡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기에, 그대로 갚아주십니다.
몸으로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예배하고 심으면, 몸으로 주님이 건강주시고, 지켜주시며, 더욱 봉사하고 예배드릴 수 있는 조건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물질로 심으면, 물질로 거두실 것입니다.
섬김을 심으면, 반드시 섬김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대접하면, 반드시 대접을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 주님을 최고로 대우하면, 주님도 우리를 최고로 대우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을 하찮케 대우하시면, 주님도 멸시하실 것입니다.
그렇게에, 우리의 마음을 드리시는 분들은 물질도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것으로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 즉 사랑인데, 우리의 사랑을 드리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을 암송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탄절에 말씀 암송과 감사로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탄에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가장 귀한 선물임을 아시고 말씀을 암송하시면서, 주님께 마음껏 마음과 감사로 물질을 드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