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1장 1~4절]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오늘부터 우리가 암송한 데살로니가전서를 강해하도록 하겠습니다.
데살로니가는 지금의 그리스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세운 교회로 거기서 오래 있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복음 전하지 못하게 방해해서 약 한 달 정도 있다가 베뢰아로 도망을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아주 든든하게 세워지게 됩니다.
참 재미난 일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성경이 보급이 된 것도 아닙니다.
신약 성경은 393년 쯤에 정경으로 완성이 됩니다.
바울은 AD. 40~60년에 활동을 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를 세웠을 때 그곳에는 신약 성경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거의 약 한 달 가량 바울이 머물렀고, 그곳을 떠나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제대로된 목회자가 없던 교회였습니다.
① 그들은 어떻게 교회를 유지할 수가 있었고 그들은 어떻게 신앙 생활을 했을까요?
오늘날처럼 교회에 목회자가 없으면, 회자를 청빙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는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가진 성도들도 정말 본이 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신앙 생활은 목회자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어떤 목회자가 지도하느냐에 따라서 교회의 신앙 생활의 방향이 확 바뀌게 됩니다.
예를 들면, 선교를 강조하는 목회자는 선교하는데, 아주 열을 올릴것입니다.
찬양을 강조하는 목회자는 성가대와 찬양대를 조직하고 찬양을 굉장히 많이 부를 것입니다.
지역 봉사를 강조하는 목회자는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성도와 함께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입니다.
노숙자에게 식사를 제공하는데 집중하는 교회도 있을 것이고, 다문화 사람들에게 집중하는 교회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목회자가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서 성도님들이 따라가게 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② 그러면, 바울은 어떤 목회를 했습니까?
바울은 딱 한 달 데살로니가에 머물면서 교회를 세우고, 교회의 성도님들을 가르치고 떠났는데, 그들이 모범이 되는 교회로 우뚝 섰습니다.
[살전 1: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이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고, 바울 목회자의 지도력이 굉장히 뛰어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목회한 방향은 무엇이었습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확실한 한 가지를 심어주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vs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성도로 하나님이 너희를 택하셨다는 믿음을 확고히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라는 확신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이 하나님이 택한 민족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아브라함의 몇 대 손...
12지파 중에 어떤 족속의 몇 대 손...
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자신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확신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어떤가 하면, 내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인가?
라는 확신이 별로 없습니다.
어떤 때는 있는 것 같다가
어떤 때는 없는 것 같다가...
이렇게 왔다 갔다 합니다.
교회 나와서 예배 드릴 때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 같다가 일주일 동안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어버리고 삽니다.
이것은 굉장히 잘못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들이 너무나 자주 일어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내가 사람인지 아닌지 의심하시는 분 계신가요?
나는 사람이 아니라 개나 고양이나 소나 양이요... 라고 생각하시는 분 계세요
그래서 하루는 사람처럼 행동하다가 어떤 때는 개나 고양이처럼 행동하다가 그러시는 분 아마 우리 중에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내가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동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내가 왜 교회에 나와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당연히 주일에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행동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마치 사람이 밥을 먹듯이 말씀을 매일 암송하면서 말씀을 먹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사람이 밥을 먹지 않고, 소처럼 들에 자라는 풀을 뜯어 먹고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지요.
사람처럼 생긴 소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사람이라고 한다면, 부모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은 당연하잖아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가 예수님께 순종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고, 기도하면서 교제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님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을 당연히 한 것입니다.
왜요? 그들에게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어떤 확신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
그래서 나는 지금 하나님의 자녀이다.
이런 확신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음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자... 외쳐 봅시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아멘...
여기에 확신을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엡 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우리를 창세 전에 택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믿음에 탁 서 있으셔야 합니다.
③ 그러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나의 삶은 누가 책임지십니까?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걱정할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러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왜요? 나의 아버지되신 하나님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아버지되신 하나님이 나의 전 생애를 책임져주시고,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최소한 우리가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 지금 헷갈리고 계시다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아니면, 하나님 아버지가 능력이 없으셔서 나를 도와주지 못하는 분으로 믿고 있든지,
아니면,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잘못된 믿음인가 하면, 내가 아직도 뭔가를 하지 않아서 아버지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여러분, 천만의 말씀이예요.
하나님 아버지는 내가 무엇인가 했다고 해서 잘도와주시고, 내가 무엇을 안했다고 해서 안도와주시고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내가 최소한 한가지만 하면, 하나님 아버지는 언제든지 나를 도와주시고 나를 잘되게 해 주십니다.
그것은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겁니다.
그것은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포도나무의 비유가 나옵니다.
[요 15:1,2]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예수님은 참포도나무이시고,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이신데, 우리는 참포도나무되시는 예수님께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마치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 15: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가지인 우리들이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뭐다.
참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께 꼭 붙어 있는 겁니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전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 예수님께 꼭 붙어 있기만 하면, 아무 것도 안해도, 그 사람은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④ 열매를 누가 맺게 합니까?
바로 참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이 열매를 맺게 하는 겁니다.
가지가 아무리 용을 써도 스스로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하는데, 오직 우리가 참포도나무되신 예수님께 붙어 있기만 하면, 농부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잘 길러주시고, 돌봐주셔서 가지인 우리들 삶 속에서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됩니다.
이런 열매 맺는 삶의 출발점이 뭐라구요?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택하셨다는 확신에서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예수님께 꼭 붙어 있으려고 합니다.
⑤ 그러면, 예수님께 꼭 붙어 있는 것이 뭡니까?
그것은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믿음의 역사,
둘째는 사랑의 수고,
셋째는 소망의 인내입니다.
그것이 3절 말씀입니다.
vs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이 왜 기억합니까?
하나님의 자녀이니까요.
부모가 자기 자녀를 기억하지 못하면, 이거 큰 일 아닙니까?
그런데, 부모는 절대로 자기 자녀를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반드시 자기의 자녀를 기억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는 반드시 세 가지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입니다.
이것이 또한 예수님께 붙어 있고자 하는 우리가 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믿음의 역사가 무엇입니까?
역사는 헬라어로 에르곤...
이것은 일, 행위를 말합니다. work.
믿음의 일을 해야 합니다.
⑥ 믿는다고 할 때, 무엇을 믿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뭐... 당연한 것이지요.
말씀 암송하셔야 합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성경에 없었기에 바울이 전한 말씀을 외우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또한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구약 성경을 외웠을 것이고, 또한 바울이 쓴 서신서를 외웠을 것입니다.
어째든 믿음의 역사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바울이 한 달 정도 있다가 떠난 후에도 그들이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된 이유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이 딱 하나에서 시작이 됩니다.
바로 성경 암송입니다.
말씀을 암송하지 않는데, 믿음이 생긴다.
이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사람이 어떤 음식도 먹지 않았는데, 사람이 허기지지 않고, 점점 건강하고 튼튼해 진다는 것과 같습니다.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의 음식인 성경 말씀을 먹지 않았는데, 영적으로 풍성해지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자라고, 영적으로 성장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도들이 해가 지나도 믿음이 제자리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을 먹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참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참포도나무에서 올라오는 수액을 먹습니다.
그래서 가지가 마르지 않는 겁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이것은 영의 양식입니다.
[마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하나님의 말씀을 떡 먹듯이 우리는 매일 먹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는 이유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먹으면서 믿으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두 번째로, 사랑의 수고입니다.
말씀을 믿게 되면, 그다음에 해야 할 일이 생깁니다.
그것은 믿는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믿는대로 행하는데, 그냥 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즉, 사랑의 수고를 반드시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데, 사랑의 수고를 하지 않는다면, 그는 지금 하나님을 믿고 있지 않는 겁니다.
주일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 드리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어떤 특별한 일이 없이 어떤 사람이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면, 그는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있더라도, 아주 갖난 아기와 같은 믿음이 있기에 그는 좀 더 자라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믿고 있다면,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사랑의 수고를 하게 되어져 있습니다.
믿으니까. 행동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믿지 않으면, 안합니다.
돌다리가 있는데, 돌다리가 튼튼하지 않다는 믿음이 있다면, 분명히 말하건데, 다리를 건너가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의 사랑의 수고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서 수고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수고는 항상 이타적인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배부르면, 다 배부른 줄 압니다.
그것이 바로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이타적인 사랑은 상대방의 필요를 채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존중해 주는 것은 강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욕하거나 비난하면, 여러분, 마음 상하시지요.
그런데 사랑을 하게 되면, 상대방을 존중해 주니까.
마음 상하지 않습니다.
왜요? 그것이 상대방의 자유이고, 그것을 존중해주는 겁니다.
여기까지 갈려면, 한 참 깨달아야 할 분도 있지만, 어째든 원리는 이타적인 사랑을 하는 겁니다.
내가 전화를 걸었는데, 상대방이 전화를 안받아요.
그래도 마음 상해하지 마세요.
거는 것도 내 자유이지만, 안 받는 것도 상대방의 자유입니다.
그것을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그냥... 뭔 일이 있나보다... 이러면 됩니다.
그것이 뭐라구요?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의 수고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사랑의 수고는 상대방의 필요를 채우는 겁니다.
필요를 채우면서도 아무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했으니, 너도 이렇게 해야지.
이것은 사랑의 수고가 아닙니다.
내가 한 번 샀으니, 너도 한 번 사야지.
이것은 사랑의 수고가 아닙니다.
내가 한 번 샀으니, 내가 또 사야지.
이것이 사랑의 수고입니다.
주고 또 주는 것.
이것이 사랑의 수고입니다.
왜요?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주고 또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내가 주면, 나는 가난하게 되느냐?
아닙니다.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누가요?
하나님 아버지가요.
그러니까. 믿음이 없으면, 못 줍니다.
즉, 믿음이 없으면, 사랑의 수고를 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청소를 하시는데, 교회에서 여러분의 집을 청소해 주지는 않지 않습니까.
봉사하고 봉사하고, 주고 또 주는 겁니다.
헌물을 드리고, 또 드리는 겁니다.
왜요? 그것이 바로 사랑의 수고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들어오니까.
이렇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수고를 못하시는 분들은 아직 믿음이 어리다고 보면 됩니다.
추수감사절은 여러분이 교회와 성도님들을 섬기는 축제입니다.
그 때, 여러분 잘 계획하셔서 많이 섬기십시오.
또, 우리가 암송 축제 할 때, 축제를 위해서 선물을 준비하셔서 성도님들을 섬겨주십시오.
그것이 바로 사랑의 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없이 그냥 맨날 받기만 하시는 분들은 사실, 믿음이 없으신 분들입니다.
왜요? 믿으면, 반드시 행하기 때문입니다.
행하려고 할 때, 누가 채워주시고, 주십니까?
하나님 아버지가 주십니다.
어떻게요? 더 풍성히 채워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입니다.
소망의 인내는 딱 하나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이십니다.
그것을 기다리는 자가 되셔야 합니다.
다음에 나누겠지만,
[살전 1: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이것이 소망의 인내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딱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내가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이 딱 하나있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다시 오시리라는 약속입니다.
나머지 성경의 모든 약속은 다 이루어졌습니다.
어디서요?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이 성경의 모든 약속을 다 이루셨기에 우리는 그냥 다 이루셨음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소망.
예수님이 다시 오시리라는 확신을 꼭 가지시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주님 안에 붙어 있으려는 노력이 있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이 기억할 만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할만한 성도는
내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알고,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믿고,
예수님께 딱 붙어 있어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가지고 우리의 신앙 생활을 잘 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고, 우리의 삶을 아름답고 복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복이 여러분의 삶에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