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1장 5~10절]
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는 어떤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즉, 혼자 독창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비슷비슷하게 살아갑니다.
한국 사람이면, 밥 먹고, 국 먹고, 나물반찬에 찌개 등등 이렇게 삼시 세끼를 먹습니다.
요즘은 피자, 치킨, 스파게티, 쌀국수 등등 다양한 음식들을 먹지만, 그래도 사람이라고 하면, 비슷비슷한 식사를 합니다.
뭐...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성격도 비슷비슷합니다.
한국인의 정서라는 것이 있습니다.
외국사람들이 본 한국 사람들은 정이 많고, 친절하고, 도둑질 안하고, 질서를 잘 지키고, 남에게 피해를 안준다고 합니다.
문화적으로 봐도. 우리나라 문화가 세계적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영화나 음악 분야에서 세계 사람들이 얼마나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한국어를 배우려고 많은 외국 대학교들이 한국어 강좌를 개설하는 추세입니다.
지금은 외국 마트에 가면, 한국의 라면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제가 20년 전에 미국에 갔을 때만 해도 한국 음식이나 한국 라면이 그렇게 인기가 없었는데, 요즘은 너무나 잘 팔리고 많은 외국 사람들이 한국 음식과 문화를 즐기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도 외국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합니다.
요즘은 외국 전문 음식점들이 곳곳에 많이 생기고 있고, 또 그런 음식점들이 잘된다고 합니다.
멕시코 음식이나 태국 음식, 베트남 음식, 마라탕 같은 중국 음식 등등.
세계의 음식들이 들어와서 서로 서로 문화들이 섞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전 세계 사람들이 비슷비슷해집니다.
각 나라의 독특한 문화가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세계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앞으로는 언어도 배울 필요가 없이 AI 가 자동으로 번역을 해 주어서 아무런 문제 없이 전 세계 사람들과 소통이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이렇듯 사람들이 비슷비슷하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성경에서는 두 종류의 사람으로 딱 분류를 합니다.
그것은 주님을 본 받은 사람과 주님을 본 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이 식당에 가면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음식을 시켜서 먹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를 본 받는 사람과 예수를 본 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밤이 되면, 사람들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을 잘 것입니다.
잠을 자더라도 거기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주 예수를 본 받은 사람과 주 예수를 본 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거의 구별이 안됩니다.
그러나 마음 속 즉 내면에 가면 전혀 다릅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자와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자로 구별이 됩니다.
여러분, 교회를 다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주일에는 반드시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다닌다고 그 사람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교회 다니는 것만 다르지 안믿는 사람과 거의 비슷할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vs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데살로니가 교회에 많은 환란이 있었습니다.
그 환란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교회를 핍박하는 무리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째든 많은 환란이 있었지만, 데살로니가 교회가 정말 집중한 것이 있었습니다.
지난 주에 제가 설교도 했지만, 그것은 바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즉, 오늘날로 말하면, 서울에 사는 분들은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할 일도 많고, 해야할 일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성령의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말씀을 내 마음 속에 기록했습니다.
[신 33:3]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의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이 말씀을 받아들인 것이 신명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아주 힘든 상황이지만,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마음에 새기는 것은 아주 기쁜 일입니다.
그것을 예레미야는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렘 15: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가, 읖조리다) 하는도다
말씀이 즐거운 것입니다.
성령님이 그 안에 있으신 분들은 말씀이 기본적으로 아주 기쁨과 즐거움이 됩니다.
어떤 분은 말씀 암송하는 것이 지겹다고 하고, 귀찮다고 하고, 힘들다고 합니다.
그냥 편안하게 신앙 생활하지, 왜 번거롭게 암송하냐고 합니다.
암송하시는 것이 지겨우십니까?
아니면, 암송하시는 것이 즐거우십니까?
제가 늘 말씀 드리지만, 우리가 성경과 다르게 살면서 성경에 있는 복을 받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교회 다니시는 분들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복을 주시리라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모습으로 살면서 하나님이 잘되게 해 주신다고 믿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장담하건데,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시편 1편의 기자는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밤낮으로 하가... 읖조린다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다고 말합니다.
① 그러면, 여호와의 율법이 즐겁지 않으면, 복 있는 사람입니까? 복 없는 사람입니까?
여러분, 대답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는 것이 즐겁지 않으면, 성경에서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말씀 암송이 즐겁지가 않으니 말씀 암송을 할 리가 없습니다.
말씀 암송 안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하면,
vs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지 않으면,
즉, 기쁜 마음으로 말씀 암송을 하지 않으면,
주를 본받는 자가 되지 못합니다.
나의 주님되신 예수님을 본 받기 위한 조건이 여기서 나옵니다.
여러분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간에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는 사람이 우리와 즉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 겠지요.
주를 본받은 자가 됩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본 받는 사람과 주님을 본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② 주님을 본 받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그것은 너무나 너무나 중요합니다.
vs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데, 그 중에 그들이 가진 믿음이 하늘로부터 다시 강림하실 예수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님을 간절히 간절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를 본받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여기에 대한 예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24:39~42]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두 사람이 밭에서 일을 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겉 모습은 똑같아 보이지만, 주님이 임하시면, 주님을 본 받은 사람은 주님이 천국으로 데리고 가시지만, 주님을 본 받지 않은 사람은 버려둠을 당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두 사람이 밤에 잠을 자고 있다고 해 봅시다.
자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주님이 강림하실 때,
주님을 본 받은 사람은 주님이 데리고 가시지만, 주님을 본 받지 않은 사람은 주님이 버려 버립니다.
친구랑 놀러를 갔는데, 아주 신나가 여럿이 놀고 있다고 해 봅시다.
노는 모습은 비슷하고, 노는 즐거움도 있지만,
그 때, 주님이 강림하시면,
주님을 본 받은 사람은 주님이 데리고 가시지만, 주님을 본 받지 않은 사람은 주님이 데리고 가시지 않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다 같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주님이 강림하시면,
주님을 본 받은 사람은 주님이 데리고 가시지만, 주님을 본 받지 않은 사람은 주님이 버리십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마 24:42절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깨어 있으라...
여기에 주목해야 합니다.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여라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암송해라... 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설명을 하면,
[마 24:37~39]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홍수로, 물로 멸망시킬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그 말씀을 받아들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방주를 지었고, 그들은 방주에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노아 때, 노아가 하는 행동을 보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무슨 홍수냐.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가 즐거운데로,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그냥 오늘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지냈습니다.
언제까지 그랬습니까?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여기서 깨닫지 못하였으니...
③ 이것은 무엇을 깨닫지 못했다는 겁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농담으로 여겼다는 겁니다.
오늘날도 주님을 본 받지 못한 사람은 주님이 다시 강림하실 때에 버리십니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주님이 강림하실 때에 내가 주님을 공중에서 끌어올림을 받아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사느냐 안사느냐의 문제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주님이 강림하실 때에
버림을 받으면,
그 때, 여러분은 어찌하시렵니까?
그 때는 목사도 힘을 쓰지 못합니다.
내 옆 사람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데려 가시는데,
"주님. 내가 사랑하는 내 옆 사람도 같이 데려가시면 안되요."
이렇게 말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주님을 본 받지 못하면,
주님을 닮지 못하면,
주님의 마음, 주님의 생각, 주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은 천국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자녀가 들어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 하나님의 자녀처럼 행동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하나님의 자녀처럼 행동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가 천국에서 어떻게 사는 것인지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본 받은 자가 되면, 그 사람은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vs 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누가요?
주님을 본 받는 자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④ 그러면, 주님을 본 받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살겠습니까?
자기 마음대로 살겠지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는 전혀 다르게 살겠지요.
왜요? 말씀이 그 속에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세상의 사람들이 이야기가 그 마음에 가득차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사니까
나도 그렇게 사는 거야.
어떤 유명한 교수가 쓴 책에는 이렇게 살라고 했으니 나도 그렇게 사는 거야.
어떤 학자가 이런 문제는 이렇게 풀었으니 나도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풀면서 사는 거야.
유명한 의사가 이렇게 해야 건강하다고 하니까 나도 그렇게 살아야 건강한 거야.
이런 식으로 세상의 지식으로 마음을 가득채우고 그렇게 그 지식으로 살아갑니다.
주님을 본받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그런 자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천국으로 데리고 가시겠습니까?
제가 지난 주에 안믿는 사람들과 식사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 중에 수영장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이 계셨는데, 그 분이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제가 예전에 목사님이 있으셔서 그 분을 7년 동안 무료로 수영장을 사용하게 해 드렸는데, 그 분이 떠나시면서 밥 한 끼 사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는데, 자기에게 전화로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로 하지 않더라구요.
그리고, 어떤 큰 교회 부목사로 가셨는데, 그래서 영혼 구원하시겠냐구요.
그런데, 거기서 저는 한 마디로 못했습니다.
그냥 마음 속으로 아이구, 대신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고 싶어지더라구요.
주님을 본 받는 모습이 드러나지 않으면, 안믿는 사람들에게도 비난을 받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주님의 말씀도 기억하지 못하고 마음에 감사를 새기지 못하고, 삶에서 감사가 나오지 못하면, 그런 사람이 어찌 천국에 가서 주님과 가까이 있겠습니까...
물론, 그 사람이 앞으로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주님만 아시겠지요.
이것은 우리들이 판단하고 정죄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내 자신은 내가 잘 돌아보아야 합니다.
⑤ 나는 정말 주님을 본 받고 살고 있는가?
주님을 본 받고 산다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내가 내 힘으로 주님을 본 받는 것은 그냥 불가능하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것 한가지만 하면 됩니다.
말씀을 내 머리에 기억하는 것은 됩니다.
말씀 한 구절. 150번, 읽는 것도 못합니까...
하기 싫은 거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씀을 읽다보면, 저절로 외워집니다.
눈으로 읽지 마세요.
입으로 말씀을 소리내서 읽는 겁니다.
그렇게 머리에 기록된 말씀은 무엇과 같은가 하면, 마치 씨앗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암송한 말씀인
[요일 3: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것이 바로 말씀 암송한 것이 머리에 기록된 겁니다.
그리고 주여... 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그 말씀이 마음에 성령님이 내려오게 하시고, 성령님이 그 말씀을 지키게 하십니다.
즉,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게 하시니까
주님을 본 받은 자가 됩니다.
⑥ 주님을 본 받으면 어떻게 되느냐?
vs 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말로만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이 됩니다.
능력이 나와서 말씀이 살아 움직임을 깨닫게 되고,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심을 알게 되고, 말씀에 큰 확신이 생기게 됩니다.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성령님이 나를 예수님을 닮도록 나를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내가 한 일은 딱 하나 밖에 없습니다.
말씀 암송과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 하나입니다.
그러면, 저절로 주님을 본 받도록 성령님이 나를 이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 암송도 하고, 부르짖어 기도도 하는데, 주님을 본 받지 못하는 사람은 딱 하나입니다.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하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한 마디로 고집이 센 사람입니다.
성령님이 이렇게 해라.. 하면,
예... 하고 순종하는 자가 되셔야 합니다.
자꾸 거부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본 받기 위해서는 순종하셔야 합니다.
이것은 목사가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안에 성령님이 말씀하시고, 성령님이 이끄시는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그러면, 저절로 주님을 본 받는 자가 되고, 주님이 다시 오셔서 강림하실 때, 주님이 데려가시고,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이유입니다.
주님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때, 우리 가운데 한 사람도 낙오됨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성도님들이 합심해서 말씀 암송하시고, 부르짖어 기도하시면서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잘 섬기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