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1장 16~18절
국가와 위정자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셔야겠습니다. 코로나 확산이 마치 교회인 것처럼 연일 보도를 하고, 교회의 집회를 점점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마 황제의 발견” 이라는 책에 보면, 로마의 황제 네로가 어느 날 밤에 황궁에서 로마시를 내다보았는데, 길이 좁고, 너무 집들이 너무 촘촘한 겁니다. 그래서 군사들을 시켜서 로마에 불을 지릅니다.
그 때가 64년 7월 18일입니다.
그 불꽃은 9일간 꺼지지 않고 로마 시내는 태웁니다. 그러자 성난 시민들은 네로에 대한 성토가 어마어마하게 일어납니다. 성난 민심을 달래야 할 필요가 생기자 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한 짓이다.”
그 후에 기독교인들을 어마어마하게 잡아 죽입니다. 보통 바울 사도가 로마에서 순교를 당했다고 하는데, 그 시기가 거의 67년 정도 됩니다. 64년 방화 후 3년 정도 감옥에 갇혔다가불에 태워서 죽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것이 로마 황제에 의한 기독교인들의 박해의 시작으로 봅니다. 기독교를 희생 제물로 삼는 황제의 욕심과 정치적 박해가 맞물린 겁니다.
역사는 반복이 된다고 코로나의 시대적 고통 앞에서 교회를 사회의 적으로 앞세우는 것은 사탄의 전략인 듯 합니다. 왜냐하면, 교인들의 2차, 3차 감염을 보면, 200~250명 정도가 됩니다. 2020년 7월 11일 통계에 의하면, 전체 감염자가 3,373 명입니다. 그러면, 약 1.8% 정도가 교회에서 감염된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98.2%는 어디입니까? 천지/물류센터/요양병원/클럽/운동시설. 이런 곳입니다.
그런데, 총리가 유독 교회의 모임만 축소하려는 것. 이것은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저는 정부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원해서 그런 것은 아니니까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도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이 모든 일 가운데 잘 극복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잠시 10초만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코로나 빨리 종식되게 해 주세요.
▣ 오늘은 하나님이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셨는데,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셨다면, 진리의 말씀으로 사셔야 합니다. 그럼, 진리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 고양이가 새끼를 낳으면, 고양이 새끼가 된다고 했습니다. 고양이 새끼는 어느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엄마 고양이처럼 행동을 합니다. 이것은 당연한 겁니다.
그럼, 하나님이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면, 우리도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진리의 말씀으로 살아야 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진리의 말씀대로 사는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듯이범사에 감사해라 했으면, 점점 감사하는 삶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매일 감사가 차고 넘쳐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리스도인 중에 정말 감사가 넘치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요?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이 비난하고 따지고 정죄하고 싸우는 것이 더 정상적인 모습이 아닙니까? 그래서 신문에서는 교회에서 싸우는 모습들이 많이 나옵니다. 성추행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들이 생깁니다. 그래서 안 믿으시는 분들이 교회를 욕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비난합니다. 이런 분들 욕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 줄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믿는 우리들도 교회를 비난하고 서로 난도질하고 있으니까요. 저는 이런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교회는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고 저 성도는 왜 저러니. 이 성도는 왜 그러지 않니..." 등등. 서로 헐뜯는 말을 하고 있으며, 교회가 자기 기준에 충족을 시켜야 한다고 판단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정당하다고 외칩니다.
그럼, 진리의 말씀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는데,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하는데, 그리스도인 자신은 왜 감사를 하지 못할까요?
성경에는 잘 될 때만 감사해라. 그랬습니까? 아니지요. 힘들고 어렵고, 지치고 피곤하고, 일이 뜻대로 안 될 때도... 즉 범사에,,,
범사에 감사해라.
범사에 라는 헬라어는 “파스”입니다.
이것은 everything 모든 것.
any and every. 어떤 것이든지 모든 것이든지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종류든지 상관없이 모든 종류에 뭐하라구요? “감사해라.” 이것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항상 기뻐해라...
이 말씀도 있지요. 항상도 마찬가지로... 헬라어로 “판토테” 인데. 범사에 라는 “파스”에서 유래된 부사입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기뻐해라... 이것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진리의 말씀으로 태어났다면, 우리는 진리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 당연해야 합니다.
모든 태어난 고양이가 야옹하듯이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말을 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항상 감사하고...
오른뺨을 때렸어요... 아이구 감사합니다.
내 것을 가져 갔어요... 아이구 감사합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비가 와서 좋은 우산을 쓰고 교회에 왔는데, 나갈 때 보니까 내 우산이 없어진 겁니다. 그리고 다 떨어진 낡은 우산만 남은 겁니다. 그때의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시겠습니까?
“아니, 어떤 사람이 내 우산 가져갔어?” 화가 납니다. 짜증이 납니다. 이러시겠어요? 아니면,
“아이구, 감사합니다. 제가 좋은 우산을 필요한 사람에게 선물로 드렸군요.”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이 주신 물질로 또 사면 되지요..." 이러겠습니까? 여러분, 어느 그리스도인이 정상입니까?
화내는 그리스도인 VS 감사하는 그리스도인...
▣ 사실, 이론적으로 이런데, 이것은 굉장히 힘든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저를 봐도 알거든요. 저도 아마 화내는 그리스도인 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직 덜 됐어요. 또,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것인 줄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러더라도 조금 봐 주세요. 그리고 다른 분들이 그래도, 비난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앉아서 안 그런 척해도. 우리는 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왜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낳았다면, 진리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리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가?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를 알면, 해결 방법이 나오겠지요. 그 이유는 한 마디로, 약하다는 겁니다. 즉, 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겁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하면요. 이렇습니다.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아기는 태어났기에 사람입니다. 그런데, 태어난 아기를 안아보셨지요. 자녀를 키우신 분들은 다 잘 아시겠지만.. 아기를 어떻게 안아요? 안을 때, 반드시 팔로 목을 받쳐주어야 합니다. 아기는 목에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목을 받치지 않으면, 목이 꺽겨서 위험합니다. 혼자 힘으로 뒤집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기들을 잘 때, 하늘을 보고 재웁니다. 엎어놓아 재우다가 숨 막혀 죽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고개를 돌리면 사는데, 고개를 돌릴 힘이 없는 겁니다. 그래도 아기는 사람입니다. 고개에 힘이 없고, 기지도 못하고, 뉘어 놓은 대로 가만히 있어야 하고, 똥, 오줌도 못 가립니다. 그래도 아기는 사람입니다. 이 아기는 좀 더 자라야 합니다.
아기가 열심히 엄마 젖을 먹습니다. 어느덧 6개월이 지나면, 아기가 고개를 듭니다. 1년이 되어서 돌이 되면,, 앉아서 놉니다.
좀 더 자라면, 기게 되고,
좀 더 먹고 자라면, 서게 되고,
좀 더 먹고 자라면, 걷게 되고,
좀 더 먹고 자라면, 뛰게 됩니다.
점점 자라고 힘이 붙어서, 등치가 어른 만해 질 때가 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영적인 성장도 아기가 자라는 것처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그것은 나이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렸을 때, 믿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이 들어 믿은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어쨌든 처음 예수를 믿으면, 어느 누구든지 영적인 어린 아기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러면, 태어난 아기가 처음부터 진리의 말씀대로 살 수 있나요? 아니요... 절대로 그렇지 못합니다. 그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좀 더 자라야 합니다.
사람이 시험에 빠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야고보서 시작은 시험에 대해서 시작하는데,
[약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야고보서 1장 2절에 사람은 시험을 당합니다. 시험을 왜 당하느냐? 너무나 어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험이 올 때, 시험을 이길 힘이 없는 겁니다. 이것은 신앙이 안 좋은 것이 아니라 아기라서 약한 겁니다. 아기는 면역력이 약하잖아요. 아기는 약한 겁니다. 약하다고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잖아요. 시험을 당하더라도 그리스도인입니다. 시험에 넘어지더라고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이 낳으신 자녀입니다. 그러나 아기이기에 약해서 시험에 취약하고 시험에 빠지는 겁니다.
그러다가 12절에 조금 자라서 힘이 조금 생깁니다. 그러면, 시험을 참게 됩니다. 아기로 치면, 목을 가누고, 아마 뒤집기 정도 하지 않을까요? 힘이 조금 생긴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 중에 계속해서 시험을 당하는 분이 있습니다. 목사는 이런 분들 때문에 너무나 바쁩니다. 왜요? 계속 찾아가서 위로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험에 들었으니, 어쩔겁니까? 달래 주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이것을 심방목회라는 말을 씁니다.
계속 사람을 만나서 위로해주고, 시험에 들지 않게 조언해 주고. 이러니 얼마나 힘듭니까? 목사가 몸이 수백 개라면 모를까. 어떻게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찾아가서 해결해 줍니까... 물론, 어리기에 찾아가서 달래주고, 힘을 내라고 용기를 주고 그렇게 해야 또 목사가 아니겠습니까? 성도가 힘들고 아픈데, 가만히 있으면, 그것도 목사가 웃긴 거잖아요.
그런데, 더 웃긴 것은 성도들이 거기에 재미가 들린 겁니다. 목사를 마치 자기 심부름꾼인 줄 압니다. 그래서 목사가 제 때 안 오면, 섭섭해 합니다. 목사가 자기를 잘 대해주다가 어느 날 새로운 교인이 와서 그 교인을 잘 대해주면, 목사가 사랑이 변했다고 섭섭해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기들의 특징입니다.
아기는 자기만 압니다. 이기적입니다. 엄마가 뭐하든지, 자기가 배고프면 울어째낍니다. 빨리 밥 내놓으라 이겁니다. 아기는 생각합니다.
당신이 내 엄마 아니요. 내가 배가 고프니,,, 당신은 얼릉 젖을 내게 주어야 하오. 당신이 무엇을 하든지 난 상관하지 않겠소. 우선 내 배만 채우면 돼요...... 그러면서, 자지러지게 웁니다. 굉장히 이기적이지요. 그래도 우는 아기는 사람입니다. 그 아기는 좀 더 자라야 합니다.
교회에서 시험을 들어도, 화를 내도, 감사하지 못해도, 불평하고,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여서 헤매어도이기적인 행동을 해도, 그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좀 더 자라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오래돼도,, 자라지 않고 계속 아기인 상태에 있다는 겁니다. 이런 분이 가장 시험에 많이 들고, 이런 분들이 가장 고난이 많고, 이런 분들이 가장 교회에서 힘들게 하는 분입니다.
▣ 자,,, 그러면, 왜 신앙 생활한지 오래 되었는데, 여전히 아기일까요?
왜 범사에 감사하지 못할까요? 왜 쉬지 말고 기도하지 못할까요? 왜 항상 기뻐하지 못할까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딱 하나...입니다.
[약 1: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진리의 말씀을 낳으셨기에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합니까? 진리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마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이 말은 사람이 떡을 먹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이 말은 마찬가지로 사람이 말씀을 먹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레미야 15: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진리의 말씀을 먹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말씀을 암송하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한 마디로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품고,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말씀이 있기 위해서는 머리에 말씀이 있어야 하고, 머리에 말씀이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말씀을 암송해야 합니다.
말씀 암송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말씀 암송이 잘 안되니까. 그러니까. 하루에 150번, 그다음 날은 100번... 그래서 총 3600번 정도 반복해서 한 구절을 읽으라는 겁니다. 이 말은 평생 매일 암송하라는 뜻입니다. 왜요? 밥을 매일 먹잖아요. 뭐하니까요. 배고프니까요. 힘을 낼려니까요.
우리도 힘을 내기 위해서는,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암송을 해야 영적인 힘이 나서 말씀대로 삽니다.
여러분, 이제 보세요. 암송하시는 성도님들, 매일 말씀을 먹으려고 애쓰시는 분들. 4년 600구절 이것이 기초인데, 이것만 하면, 엄청 튼튼하고 영적인 거장이 됩니다.
안 하시는 분들. 오늘부터라도 하세요. 주보에 나온 데로. 카톡에 들어오셔서... 하루에 150번, 그다음 날은 100번. 반복해서 6번씩... 그냥 읽기라도 하세요. 얼마 안 걸립니다.
평생 말씀을 암기 안 하니까.. 마음에 말씀이 없으니까... 맨날 시험에 빠지고, 힘들고, 고난이 오지요. 왜요? 영적으로 약해서 그런 겁니다.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적인 힘을 기르기 위해서 반드시 말씀을 먹어야 한다.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기에 이제는 말씀을 먹으면서, 이 세상을 살아야 한다. 이것을 꼭 명심하시고, 매일 말씀을 먹으시면서, 영적으로 튼튼해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