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 데살로니가전서 2장 1~5절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3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5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이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사람들은 모습은 다 다릅니다.
백 명을 만나던, 천명을 만나던, 인류 전체를 만나던, 같는 모양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6천년으로 보는데, 6천년 동안 사람들의 모습은 다 달랐을 겁니다.
사람이라고 하는 공통된 특징은 있지만, 사람은 모두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고, 말하는 것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모두 다릅니다.
왜 사람은 모두 다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드러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 옆 사람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나와 다르구나."
자... 옆 사람에게 말해 봅시다.
저와 다르시군요.
우리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다르게 행동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나와 왜 다르게 행동하느냐... 하면,
정말 곤란합니다.
너는 왜 이렇게 안사냐... 하면,
정말 곤란합니다.
이웃을 비판하지 마십시오.
왜요? 다르기 때문입니다.
새한테, 너는 왜 물고기처럼 물에 안사냐 하고 묻는다든지
물고기한테, 너는 왜 새처럼 공중을 날라다니지 않느냐고 따진다면,
여러분, 얼마나 웃긴 일입니까?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르기 때문에 왜 너는 그러냐고 말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냥, 다르구나... 그러면 끝납니다.
사람이 다르다는 것은 재능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다 다른 재능을 주셨습니다.
이 사람은 이런 재능을 주셨고, 저 사람은 저런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다 각기 잘하는 재능은 한 가지씩 다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작곡하는 재능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포크래인을 통해 일하는 재능을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재능을 주셔서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게 합니다.
그러면, 나의 재능은 무엇일까?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세계의 모든 사람 중에 여러분은 딱 한사람이고, 여러분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과 다르기에 여러분의 재능은 세계에서 유일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세계에서 최고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귀에게 세뇌 당해서 그렇지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누구의 자녀입니까?
온 우주 만물을 만드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시민권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재능을 하찮케 여기는 이유는 마귀가 사람들을 죄악으로 빠뜨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사람들의 재능을 변질시켜 버렸습니다.
재능이 변질된 것을 어떻게 압니까?
보통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재능의 특징은 그 재능으로 돈을 얼마나 많이 벌 수 있느냐를 따집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재능은 좋은 재능
돈을 많이 못 버는 재능은 별로 좋지 않은 재능.
이렇게 구분을 해 버린 겁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우리 교회 권사님들 얼굴의 미소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아마 세계에서 최고로 아름다울 것입니다.
말씀 암송을 하면서, 영혼이 점점 맑아지니까.
점점 더 아름다워지시고 권사님들이 활짝 웃으면, 정말 행복하고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자. 이것도 여러분 재능입니다.
활짝 웃으면서,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해 주는 재능.
이러한 재능을 하나님이 주셨는데,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재능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요? 활짝 웃는다고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게 마귀에게 세뇌 당해서 그런 겁니다.
어떤 학생이 학교에서 전교 꼴찌입니다.
엄마가 말합니다.
너는 앞으로 어떻게 무엇을 먹고 살려고 그러니
공부 좀 해라.
그런데, 이 학생에게는 친구들에게 웃음을 잘 줍니다.
그래서 이 학생 옆에만 있으면 친구들이 행복해 합니다.
이 친구는 옆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이것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다르게 만드셨는데, 우리 사회는 공부 잘해서 어떻게든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져야 재능이 좋다. 능력이 좋다.
이런 식으로 평가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다 획일화 시켜 버립니다.
즉, 재능을 좋고 나쁘고 따지고, 돈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에 어긋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을 바꾸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최고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각자에게 아주 위대한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냥 그 재능을 잘 사용하면 됩니다.
① 그러면, 하나님이 주신 내 재능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금 즐겁게 하고 있는 것이 그 사람의 재능입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약을 하거나, 도박을 하거나,
술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게임에 빠지거나 등등.
어떤 일을 하고 난 후에 자기를 파괴하거나 내 이웃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이 아무리 즐겁다고 해도 그것은 재능이 아닙니다.
자기만 즐거운 것도 재능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귀의 유혹이며, 결국은 사망으로 향하는 지름길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의 특징은 나와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나와 내 이웃이 서로 행복하게 하는 것이 재능입니다.
어떤 사람이 요리에 재능이 있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내가 요리를 할 때, 나도 즐겁지만, 나의 요리를 먹는 사람도 즐거운 것을 볼 때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런 사람이 식당을 하는 겁니다. .
그는 이웃을 사랑하므로 자신의 음식을 먹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려는 마음으로 요리를 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그 식당은 잘 되게 되어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친절하게 말하는 것이 재능입니다.
친절하게 말하면, 자신도 기분이 좋지만, 사실, 상대방이 더 기분이 좋습니다.
그는 돈은 별로 없지만, 하나님이 주신 재능으로 이웃을 기분 좋게 만듭니다.
그것이 자신의 재능입니다.
어떤 사람은 잘 들어주는 재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이웃이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을 좋아하고 이웃은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으로 인해서 행복해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그 사람의 재능입니다.
그런데, 아무나 이런 재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잘 들어주는 재능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재능을 재능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런 재능 어디다 써먹냐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그런 재능을 주신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하찮케 여긴다면, 듣는 재능을 주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고, 그것이 재능인지 모르고 사신다면, 그는 평생 자신의 재능을 찾다가 말것이고, 주님이 주신 재능을 땅에 묻어두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런 재능의 특징은 어떤 사람도 스스로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
누구나 이것은 잘하는데, 저것은 못하는 것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서로 부족한 것을 메우면서 사람과 사람이 살도록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나의 재능이 무엇일까?
나도 행복하고, 이웃도 행복하게 하는 것.
이것이 재능이기에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하시고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고 잘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됩니다.
[갈라디아서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야고보서 2: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마 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최고의 계명.
즉,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과 네 이웃을 내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입니다.
바로 내 재능을 가지고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이 땅에 사는 우리에게 재능을 주시고, 그 재능을 어떻게 사용했느냐...
이것을 심판날에 평가하시고, 평가한 결과로 하늘의 상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능을 잘 사용한 사람은 많은 상급.
재능을 잘 사용하지 못한 사람은 적은 상급이 주어질 것입니다.
② 그러면,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재능으로 나와 이웃과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재능을 주신 최종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재능으로 사람만 기쁘게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개그맨 같은 경우는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
그것으로 끝.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이웃을 도와주고 기부하고 친절히 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그것으로 끝.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바로 하나님을 또한 기쁘시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자신의 재능으로 돈을 열심히 벌어서 아내를 기쁘게 하고, 남편을 기쁘게 하고, 자녀들하고 행복하고 즐겁게 살고, 주위 부모나 형제 자매나 친구를 잘되게 합니다.
그것으로 끝.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바로 사람을 기쁘게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다 합니다.
자신의 재능으로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가 더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뭐냐?
vs 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인은 한가지 더 재능을 받았는데,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복음을 위탁하셨습니다.
위탁받았다는 것은
헬라어로. 피스튜오.
이 단어는 "믿다" 라는 뜻입니다. believe.
하나님을 믿다.. 할 때, 피스튜오라는 단어를 씁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수동태로 쓰였습니다.
위탁 받았으니... 즉, 믿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좀 쉽게 풀어보면,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즉, 우리가 복음을 잘 전할 줄로 알고,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믿게 하도록
복음을 우리에게 맡겨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겁니다.
vs 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했다.
왜요? 그것이 바로 바울에게 하나님이 복음을 위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믿게 하도록 하기 위해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예외없이 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기쁜 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은 당연하지요.
아마 기뻐할 일이 있으면, 입이 근질근질 할 겁니다.
함께 나누면, 그것이 더 기쁘니까요.
③ 자... 그러면, 기쁜 소식이 뭡니까?
복음이 기쁜 소식이라고 하는데, 예수를 믿는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이 뭡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전해주겠습니까?
무슨 소식을 전하라는 겁니까?
그러면, 최소한 여러분은 예수를 믿으면서 기쁜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를 믿으면서 무엇이 기쁩니까?
예배가 기쁩니까?
기도가 기쁩니까?
봉사가 기쁩니까?
목사가 설교를 잘해서 설교 듣는 것이 기쁩니까?
성도끼리 밥 먹고, 즐겁게 지내는 것이 기쁩니까?
전도지 들고 나가서 예수 믿으라고 전도지 전하는 것이 기쁩니까?
성가대를 조직하고, 늘 찬양하는 것이 기쁩니까?
여러분은 교회 나오면서 기쁜 것이 무엇입니까?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데,
복된 소식을 전하라고 하는데, 내게 뭔가 기쁜 것이 있어야 전하지요.
사실, 얼굴이 웃음이 없고, 심각한 사람은 복음을 전할 준비가 아직 덜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내가 교회 나오고 예수 믿는 것이 기쁘지 않은데, 기쁘지 않은 일을 왜 사람들에게 전합니까?
말로 안되지요.
자... 그러면, 복음을 전하는 것.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
이것은 내가 기뻐하는 것을 전하는 것인데, 내가 무엇을 기뻐하느냐.
그것은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가, 읖조리다)하는도다
말씀이 즐거워서,
주야로... 하가(묵상). 읖조리는 자입니다.
말씀이 즐겁다는 것은
곧, 말씀은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고, 예수님 한 분으로 즐겁다는 겁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즐거우신 분들은 성경 말씀을 하가, 읖조리는 것이 즐거운 분입니다.
내가 말씀을 암송하는 것이 즐거우니까.
이웃이 말합니다.
너는 왜 맨날 즐거우냐?
그 비결이 뭐냐.
음... 나 말씀 암송하고 있어.
그것이 너무나 즐겁고,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이렇게 말했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나도 암송해 볼까.
그래. 너도 예수 믿고, 말씀 암송하면, 나와 같이 살 수 있어.
이것이 뭐하는 겁니까?
이것이 복음 전하는 겁니다.
내게 기쁜 것을 이웃에게도 전하는 겁니다.
그런데, 암송이 지겨우신 분들은 절대로 말씀 암송을 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요? 나도 지겨워서 하지 않는데, 어떻게 내 이웃에게 말씀 암송하라고 합니까.
그런데, 그것의 문제점은
[시 1:1~3]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가, 읖조리다)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하나님의 말씀이 즐겁지가 않으면, 복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을 기쁘시기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믿음 있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대로 사는 자에게 잘되게 해주시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즐겁지가 않은데 어떻게 복을 줍니까.
하나님의 복음 못 받으니, 어떻게 내 이웃에게 예수 믿으라고 합니까.
나도 복 못받는데, 너도 나처럼 예수 믿으면, 너도 복을 못받어.
그러니까. 예수를 믿어...
이게 말이 됩니까? 안되지.
그런데, 말씀을 암송하기 시작하면,
내 마음 속에 있는 말씀이 가득차기 시작하고, 말씀이 가득찬 것은 당연히 나오게 됩니다.
말씀이 내 속에서 나오니까.
말씀은 그 자체로 진리입니다.
이 세상에 유일한 진리,
오직 딱 하나 밖에 없는 절대 진리.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벌어지냐 하면,
vs 3.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vs 5.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간사함이나 부정한 것도 아니고
속임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진리를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러면, 재능과 결부를 해 보면, 사람들에게 나의 재능을 나누면서 사랑을 할 때,
그들에게 좋은 것을 줍니다.
그들에게 가장 좋은 것은 복음입니다.
예수님입니다.
예수를 믿게 만드는 겁니다.
그것은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차고 가득찬 말씀을 이웃과 나누는 겁니다.
예를 들면, 항상 웃으면서 따뜻하게 대하는 것이 재능이라면,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겁니다.
이웃이 묻습니다. “너는 그 상황에서 감사가 나와...”
대답합니다.
“그럼. 하나님의 말씀에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는데,
정말 내 상황이 정말 안좋지만,
그렇지만, 나는 정말로 감사해.”
이것이 뭐하는 겁니까?
복음 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어떤 사람이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그것으로 이웃을 기쁘게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위탁하신 복음도 못 전합니다.
이웃과 관계가 안 좋은데, 어떻게 말씀대로 살라고 합니까.
어떤 부모가 자식과 대판 싸워서 부모와 자식이 틀어 졌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볼 때마다 예수 믿으라고 합니다.
여러분, 그 자녀가 부모가 믿는 예수를 믿겠습니까.
아니요. 절대로 안믿습니다.
우선은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좋은 관계, 행복하고 기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기의 재능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사랑해야 합니다.
나도 기쁘고, 내 옆 사람도 기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겁니다.
그것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바로 말씀 암송하면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 속에,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차게 만들어야 합니다.
자기가 기쁜 것은 반드시 스스로 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이 가장 기뻐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기뻐서 주야로 하가, 읖조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은 복을 이웃과 나눌 때, 그 복이 점점 넓어져 가는 것입니다.
④ 그런데, 이것이 바로 누구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내 마음에 말씀이 있고, 그 말씀을 믿는 믿음이 있어서
그 말씀을 이웃에게 삶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러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다 보니까.
고난과 능욕을 당하여도 진리를 전하고 복음을 전하면서 내 이웃에게 천국가도록 인도를 했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본을 받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