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쓸 것을 풍성히 채우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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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4장 16~19절]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하나님 앞에 일년을 생각하면서 추수의 기쁨을 누리시고, 또 내 삶을 아름답게 채워주신 하나님께 마음껏 감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우리가 감사할 것이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내 삶에 감사가 더욱 많아질지에 대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어떤 모습으로 만드셨는가 하면, 그릇 형태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를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이렇게 주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사야 64: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우리는 진흙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기에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것은 사람이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증거입니다.

 

흙으로 사람을 만드신 분이 토기장이이신 하나님 아버지이신대,

어떤 형태와 모양으로 만드셨는가 하면, 바로 그릇 모양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고린도후서 4:6,7]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여기서 보배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깨지기 쉬운 질그릇으로 만들어졌습니다.

, 우리 몸이 바로 질그릇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자는 자신의 질그릇에 예수를 담고 있는 자이다... 라는 것을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질그릇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지만, 질그릇의 질은 헬라어로 "오이트라키노스" 라고 부르며, 이 뜻은 흙이나 진흙으로 만든...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질그릇은 흙으로 만든 그릇을 뜻합니다.

 

우리가 질그릇이라는 것은 많은 의미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릇의 용도입니다.

 

여러분 집에도 그릇이 있지요.

아마 사람이 사는 곳에 그릇이 없는 집은 없을 겁니다.

그릇은 어디에 씁니까?

그릇은 무엇을 담는데 사용합니다.

무엇을 담을 것인가는 그릇을 소유한 주인의 마음입니다.

 

어째든 그릇은 무엇을 담는데, 사용이 됩니다.

사람을 잘 보십시오.

사람은 우선은 먹을 것을 몸에 담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음식을 몸에 집어 넣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아니 우리 평생 우리의 몸에 음식을 담습니다.

음식을 우리 몸에 담지 못하면, 사람은 죽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가뭄이 오면, 굶어 죽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람은 음식을 몸에 담아야 합니다.

 

또한 사람은 공기를 몸에 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한 순간도 숨을 몸에 담지 않으면 안됩니다.

공기를 몸에 스스로 담지 못하면, 그 사람은 죽습니다.

 

또한 사람은 사랑을 담아야 하고, 물도 담아야 하고, 돈도 있어야 하고, 집도 있어야 하고, 옷도 있어야 하고, 친구도 있어야 하고,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특히,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몸에 예수를 담아야 합니다.

 

① 왜? 예수를 담아야 합니까?

 

예수를 담지 못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은자 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재미난 말씀을 하는데,

 

[디모데전서 5: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요한계시록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살았으나 죽은 자...

그런 자가 바로 향락을 좋아하는 자입니다.

그런 교회가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 사데 교회는 살았으나 죽은 교회였습니다.

아마... 사데 교회는 향락을 좋아하는 교회가 아니었을까요?

오늘날 놀고, 먹고, 즐기는 교회가 참 많습니다.

그런 교회가 재미있고, 신나고, 흥이 나는 교회 같으나 주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문제는 주님을 담지 못하면, 그는 살아 있으나 죽은 자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곧 영원한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요일 5:11~12]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②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는데, 우리는 영생을 어디에 담겠습니까?

 

나의 육체의 그릇에 담습니다.

 

그런데, 영생이 어디에 있어요?

바로 하나님 아들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 예수를 자기 그릇에 담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를 내 육체의 그릇에 담지 못하는 사람은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를 내 육체의 그릇에 담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 있으나 죽은 자입니다.

 

죽은 자의 특징이 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죽은 자는 썩은 냄새가 납니다.

썩은 냄새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근심, 걱정, 두려움, 시기, 분쟁, 싸움,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등등.

이런 입술에 독사이 독이 가득하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한 자입니다.

그것이 사람에게서 나오는 썩은 냄새입니다.

왜요? 몸은 살아 있는 것 같으나 그 안에 예수의 생명이 없어서 죽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없는 자는 살아있느나 죽은 자여서 가뭄이 오게 되면, 그 사람은 엄청난 고통을 당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고통 당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가 살아 있으나 죽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일 년 동안 사람에게 추수의 기쁨을 못 누리는 것도 바로 죽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나옵니다.

엘리야가 살았던 시대의 왕은 이스라엘 아합 왕이었습니다.

아합 왕의 아내는 이세벨이었는데, 그녀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아니라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자였습니다.

바알은 농업과 풍요의 신이었습니다.

바알신이 비를 내려 눙작물을 기르게 하고, 바알신에게 제사하는 사람들에게 풍요를 가져다 준다고 믿었습니다.

 

아세라는 바알의 어머니입니다.

아세라 여신은 풍요와 출산, 생명을 주는 것으로 사람들이 섬겼습니다.

그러니까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자들은 하나님이 아닌 이런 우상이 자신들에게 풍요로움과 출산, 비를 가져다 주어서 먹고 살게 한다고 믿는 자였습니다.

바로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이 그런 여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아합 왕 당시에 이세벨의 영향으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시대였습니다.

 

그 당시에 하나님이 어떻게 했는가 하면, 가뭄이 들게 했습니다.

지독한 가뭄이었습니다.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 겁니다.

무려 7년 동안 말입니다.

 

여러분, 오늘날은 곡식 저장하는 기술이 발달 되었고, 무역을 하면서 곡식이 부족하면 사오고, 물을 가두는 댐도 만들고, 수로도 만들고 그러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마 오늘날 우리 나라도 일 년 정도 비가 안오면, 저주지가 다 말라 버리고, 농사도 못 지을 겁니다.

아합왕이 BC 9세기 정도니까,

약 삼천년 전에는 더 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가뭄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은 신이고,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시대에 가뭄의 영향은 엘리야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가뭄이 시작 되자 엘리야 선지자는 냇가에서 물을 먹고, 까마귀가 가져다 주는 떡을 먹으면서 버텼습니다.

 

③ 하나님의 선지가 엘리야가 왜 고통 당합니까?

 

그것이 우리가 눈에 보이는 물질의 풍요로움과 영적인 풍요로움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다고, 수적으로 많다고 영적으로 풍요롭다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스라엘에 가뭄이 찾아 왔을 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먹이셨습니다.

굶어 죽게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 생각해 봅시다.

아합 왕 시대에 가뭄이 올 때, 가장 풍요로운 사람이 누구였을까요?

 

물론, 아합 왕이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왜요? 왕이니까요.

나라를 통치하고 다 가지고 있는 왕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성경의 이야기를 좀 더 보시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됩니다.

 

엘리야가 시냇물을 먹고, 까마귀가 가져다 주는 떡을 먹다가 가뭄이 더 심해지니까 시냇물이 말라 버립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과부의 집으로 엘리야를 보냅니다.

 

그런데, 그 과부의 집은 세상에 가난해도 가장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남편도 없지요.

자식은 하나 있는데, 지금 먹을 것이 없어서, 그 자식과 함께 마지막 남은 빵 한 조각 먹고, 이제는 굶어 죽으려고 한 그런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엘리야를 누구에게 보냈는가 하면, 바로 그 과부의 집에 보내신 겁니다.

하나님도 참 웃기시지요.

아니 엘리야라고 하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선지자를 보내도 찟어지게 가난한 곳에 보냅니다.

왕궁으로 보내던지, 그래도 부자 집에 보내서 넉넉하게 먹고, 부족하지 않은 양식을 저장한 집으로 보내지 하필이면, 딱 빵 한 조각 남은 집으로 하나님이 보내십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가서 그 과부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열왕기상 17:10,11]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11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과부에게 물을 조금 가져오고, 떡 한 조각을 가져 와라...

이렇게 요구합니다.

그러자 과부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왕상 17:12]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내가 지금 빵 하나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려고 한다.

내게는 그렇게 풍요롭게 먹을 것이 없다.

나는 찢어지게 가난하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때, 엘리야가 대답합니다.

 

[왕상 17:13]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먼저 내게 그 떡을 만들어서 먹게 해라.

그리고 나서 너희들이 먹어라.

정말 웃긴 이야기죠.

아니 벼룩의 간을 빼먹지,

마지막 남은 빵을 달라고 하네...

그런데, 더 웃긴 이야기는 내가 먹고 나서 너도 먹어라..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믿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아마 과부는 고민을 했을 겁니다.

이런 황당한 이야기는 첨들어보거든요.

그리고 낯짝도 두껍지,

어떻게 하나 남은 떡을 달라고 하냐... 이럴 수 있지요.

 

그런데, 그녀는 엘리야의 말대로 그렇게 합니다.

 

[왕상 17:14~1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엘리야의 말대로 하니까...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되었어요?

 

[왕상 17:15~16]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여러날 먹었는대도 불구하고, 말씀과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④ 자... 그러면, 이스라엘에서 누가 가장 부자입니까?

 

아합 왕입니까? 사르밧 과부입니까?

 

떨어지지 않는 통의 가루과 병의 기름을 가진 사르밧 과부가 가장 부요한 자입니다.

 

먹으면 생기고 먹으면 생기고...

마치 샘솟듯이 솟어나는 옹달샘 같지 않습니까.

계속해서 먹고 살도록 생기는 자가 그런 자가 가장 부요한 자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면, 떨어지지 않는 통의 가루, 즉 떡은 말씀이신 예수를 상징하며, 병의 기름은 성령님을 뜻합니다.

 

내 안에 말씀이신 예수님을 가지고 있으며, 내 안에 기름을 부어주시는 성령님이 계시면, 그 사람은 가장 부요한 자입니다.

그것은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아서 여러분의 삶에 마르지 않는 떡과 기름이 여러분의 그릇에 있기를 축복합니다.

 

바로 내 안에 예수님과 성령님이 계시는 자는 목마르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볼 때, 가장 가난하고 볼품없고 무능력해보이고, 초라해 보여도 그 안에 예수님의 말씀과 성령님이 계신 자는 가뭄이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요? 생수의 근원이신 분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과 기름부으심이 없는 자는 살아 있으나 죽은 자입니다.

너무나 잘 사는 것처럼 보이나 가뭄이 올 때, 그런 사람은 굶어 죽습니다.

그릇이 비워져있고, 그릇이 더러워서 질그릇이 깨질 때, 버려집니다.

 

그러나 말씀이 그릇에 담겨 있고, 기름부음이 그릇에 가득찬 자는 그런 자는 너무나 너무나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요?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이 적용 되기 때문입니다.

 

vs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우리의 모든 쓸 것을 풍성히 채우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한 해 동안 주님이 여러분이 필요한 것을 채우셨습니까?

아멘...

먹을 것을 채우시고, 입을 것을 채우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채우셨습니까?

... 채우셨지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건강해야지... 라고 생각을 해도 건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병이라는 것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 병원에 가서 입원한 사람 없었잖아요.

여러분, 못 먹은 것 있습니까?

다 잘 먹었잖아요.

너무 먹어서, 살이져서 그렇지.

한 해 동안 주님 앞에 매 주 나와서 예배드리신 것은 바로 걸으실 수 있으니까 그런 거 잖아요.

그리고 일하시면서, 돈이 떨어지지 않았잖아요.

 

마음적으로 고생하신 분이 있으실지 모르지만, 그래도 마음에 평안과 사랑과 기쁨을 가지시면서 올 한 해 살으셨잖아요.

 

소위 말하는 가뭄이 내게 미치지 못했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모릅니다.

왜요? 가뭄이 찾아오니까요.

그것이 경제적이든, 인간관계든, 일에 관한 것이든 어째든 나를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사람들 마다 한 두 개는 꼭 있습니다.

그것이 가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님들은 그것이 없었잖아요.

왜요?

바로 말씀과 기름부음이 내게서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나오는 이유는 바로 말씀 암송과 부르짖는 기도를 계속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릇이라고 했잖습니까?

 

⑤ 그 그릇에 무엇을 담아야 합니까?

 

바로 주의 말씀을 담고, 기름부음을 담아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이 흘러나오고, 성령님의 역사가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이거는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밀가루 통의 밀가루를 가져다가 기름 통의 기름을 붓고 빵을 만드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말씀을 내 안에 새기고,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풍성한 대로 우리의 삶에 채우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이 뭡니까?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겁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이 뭡니까?

 

vs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에게 요구한 것이 뭡니까?

먼저 나로 먹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너희들이 먹어라...

이것은 순서입니다.

 

이 말씀은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가 추수 감사를 드리는 것은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풍성해지니까 감사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작년에 감사해서 드리니까 하나님이 올 해에도 풍성히 거두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는대로 거두는 법칙과도 동일합니다.

심으니까 심는대로 그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거두면서, 주님 감사합니다... 라고 

이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날이 바로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렇게 고백하는 것이 바로

 

vs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하나님께 먼저 드리는 감사 제물은 어디서 나오는가 하면,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가 믿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왕상 17:14~1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우리가 말씀대로 살았더니..

 

[왕상 17: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말씀대로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영적인 비밀입니다.

올 한 해, 주님의 말씀대로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해서 주야로 하가 읖조리고, 부르짖어 기도했더니 주님이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은 떨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채우신 것입니다.

 

그렇게 올 한 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시고 마음껏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해 주님께 예물을 드리십시오.

그러면, 다음 해에도 주님의 영원한 생명의 역사가 

여러분 삶에 나타나실텐데...

더 풍성하게 나타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심은 대로 반드시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그릇에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 날마다 차고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열심을 다해 말씀 암송하시고, 부르짖어 기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내년에도 아니 여러분의 평생에 떡과 기름이 떨어지지 아니하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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