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 로마서 1장 1~6절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에는 똑같이 만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다 다릅니다.
얼굴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식성도 다르고,
자라난 환경도 다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왜 나와 다르냐?
이렇게 말하시면 안됩니다.
너는 왜 이렇게 하냐?
이렇게 말하시면 안됩니다.
물론, 지혜롭지 못해서 손해를 보고,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놔두면, 큰 일이 나지요.
반드시 온 몸을 사용해서 막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애기가 무턱대로 거리를 걷는다면, 차 사고 위험이 있으니 아이가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해서는 안됩니다.
싫다고 해도, 반드시 매를 들어서라도 막아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일반적인 상식과 예의를 가지고 있는 분들은 자기만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특징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저렇게 살아갑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저렇게 살아가는 것보다 더 좋다... 라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도 나름대로 좋고, 이것도 나름대로 생각해보면 좋습니다.
예를 들면,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 중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습니까.
그것을 평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짬뽕을 좋아하는 사람과 짜장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습니까?
그것을 평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과 공부를 못하는 사람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습니까?
그것도 평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고전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보면,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고,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고,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습니다.
물론, 좋은 자들도 있지요.
그러나 사람은 생각보다 뛰어난 자들이 많지 않습니다.
보통은 다 그냥 평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하는가 하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아멘~~~
나보다 조금 못해도 괜찮고, 나보다 조금 잘해도 괜찮습니다.
왜 괜찮아요?
잘하는 사람이 못하는 사람을 도와주면 되니까요.
잘하는 사람은 도와주니까 기분이 좋고, 못하는 사람은 도움받아 잘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렇게 사람이 사는 사회는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상대방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음...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 하고
그렇게 넓은 마음으로 서로 용납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뭐다...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랑이라는 넓은 마음은 가지고 싶다고 해서 갖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이 커지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넓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가정은 반드시 싸웁니다.
믿음이 없는 가정은 반드시 미움이 있고, 불화가 있고, 서로 비난하고 실망하고 좌절합니다.
반대로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보듬어주고 격려하는 가정은 반드시 믿음의 가정이며,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① 그러면, 이 믿음을 어떻게 가지는가?
하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믿음은 내가 가지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없습니다.
내가 믿기 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부르심이라는 것입니다.
부르심은 우리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부르심과 믿음과 사랑의 문제를 명확히 다루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부터 함께 나눌 로마서입니다.
로마서는 바로 복음의 핵심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명확하게 설명한 책이 로마서입니다.
성경에 66권의 책들이 있는데,
다 중요하고, 다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로마서는 그 중에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해당한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차근차근 암송하고 나누다 보면,
우리의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고,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셨는지 그 의미와 뜻을 정확히 알게 되고, 그래서 신앙적인 토대가 더욱 견고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무턱대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에는 반드시 아주 견고한 이론적인 토대가 있습니다.
내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탄탄한 신학적인 구조가 있습니다.
이런 신앙적인 구조 속에서 하나님의 크신 뜻과 계획을 점차 깨닫게 되고, 나와 하나님과 협력해서 선을 이루게 되는
즉, 주님의 뜻을 이루는 아름다운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로마서의 저자는 바울입니다.
로마서는 고린도에서 저술한 것으로 보이며, AD 56~57년 경에 쓰인 것으로 추정합니다.
로마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는데,
1~11장까지는 교리적인 부분.
12~16장까지는 실천적인 부분입니다.
교리적으로는 이런데,
그러면, 이런 교리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이것을 로마서 전체인 16장에 걸쳐서 다루고 있습니다.
로마서의 가장 핵심적인 말씀은 이겁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이 로마서 전체의 핵심입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살기 위한 출발점이 있어야 합니다.
그 출발점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것이 바로 부르심입니다.
vs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1절 말씀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② 바울의 믿음의 출발점이 어디서 시작이 됩니까?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영어로 called.
헬라어로.

(클레토스)
“부름받은, 초대받은, 환영하는”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의 부르심은 언제입니까?
바로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이었습니다.
바울은 개명 전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시기에는 그는 예수 믿는 자를 박해하던 자였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 중에 최초의 순교자가 스데반인데.
그 스데반이 순교할 때, 주동했던 인물이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행 7:58~60]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을 돌로 칠 때에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즉, 청년 사울이 주동자였고, 심판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청년 사울은 가말리엘 문하의 수제자였습니다.
가말리엘은
[사도행전 5:34]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사도행전 22: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가말리엘은 그 당시 랍비들의 랍비였습니다.
유대인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최고의 학자였습니다.
그 학자 밑에서 교육을 받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아주 뛰어난 학생이 아니면 가말리엘의 밑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아주 엄격한 율법의 교훈을 훈련받은 최고의 엘리트였습니다.
그런 청년 사울은 예수 믿는 자를 잡아 죽이는 자였습니다.
예수 믿는 자를 증오하는 자였습니다.
유대교를 반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자를 잡아가려고 무리들과 함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 다메섹.
예루살렘에서 다메섹까지는 240km 정도 됩니다.
그 때에 사울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행 9:3,4]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부르십니다.
사울아... 사울아...
그 때, 사울은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예수를 만나게 된 사울이 첫 번째 듣는 음성이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입니다.
사실, 사울은 예수를 박해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예수 믿는 사람을 박해했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예수 믿는 사람을 박해하는 것을 누구에게 박해하는 것을 판단했습니까?
바로 예수님 자신에게 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주위 사람 중에서 예수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과 싸우시면 안됩니다.
그들은 너무나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왜요? 몰라서 그러는 것이니까요.
그들이 예수쟁이라고 놀리고 욕하는 것도 사실은 천지의 창조주이신 예수를 놀리고 욕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음성을 처음들은 사울이 뭐라고 합니까?
[행 9: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람들이 놀리는 예수
사람들이 조롱하는 예수.
그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우리가 섬기는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그 분은 만왕의 왕이시며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예수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사울은
예수라는 이름을 듣자.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궁금하게 됩니다.
그 당시 사울은 예수가 실존 인물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000년 전의 예수님은 사람이 사는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역사적으로 실제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여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 예수를 믿는다고 하니, 유대인들이 난리가 난 겁니다.
왜요? 자신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거든요.
그들이 생생히 살아있거든요.
사울의 스승이였던, 가말리엘이라는 랍비도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거든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시기와 질투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싫었습니다.
자신의 전통을 파괴하는 자들을 증오했거든요
혈기왕성하고 젊은 사울은 바로 그 주동자였습니다.
그가 예수를 만났다는 겁니다.
정확히는 예수님이 사울을 만나러 온 것이지요.
예수님이 사울을 부르신 것입니다.
사울이 예수를 만나고 나서 사울은 예수님이 궁금했습니다.
그가 누구인가?
그래서 사울에서 바울로 이름을 바꾸고.
그는 예수를 믿는 자가 되었으며, 예수님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vs 3,4.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세 가지로 요약을 했는데.
첫째는 예수는 육신으로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
즉, 예수는 유대인이다.
둘째는 예수는 영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셋째는 예수는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③ 이것을 한 마디로 하면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라는 겁니다.
복음의 중심, 성경의 중심은
딱 한마디로 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복음을 세 개로 나누어서 요약하면,
1. 예수는 육신으로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 완전한 사람이시다.
2. 예수는 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3. 예수는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바울을 불렀으니까
부르면, 부른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제가 거실에 청소기를 돌려야 할 필요가 있어서
막내 아들에게 아들아... 하고 부르면,
아들이 방에 있다가 조르르 나옵니다.
예... 아빠.
불렀으면, 이제는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거실을 청소기로 청소를 좀 해라.
이렇게 시키는 겁니다.
바울도 예수님이 부르셨는데.
무엇을 위해서 부르셨는가 하면,
vs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즉, 너는 복음 전해라. 라는 겁니다.
복음을 한 마디로 뭐라고 했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세 개로 요약하면,
첫째는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둘째는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고
셋째는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
이것이 복음이고, 바울에게 이것을 전하라는 겁니다.
vs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그래서 바울은 복음 전하러 다녔습니다.
예수를 전하러 다녔습니다.
예수가 누구인지 바울은 열심히 설명을 했습니다.
왜요?
이방인들도 믿어 순종하게 하려구요.
예수를 믿고, 예수님께 순종하게 하려구요.
④ 그러면, 오늘날 예수를 믿는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vs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너희도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여러분도 바울처럼 부르심을 받았다는 겁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은 다 바울처럼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구의 것으로요?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즉, 복음 전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신앙의 첫 출발이 뭐라고 했습니까?
부르심이다... 라고 했습니다.
내가 교회에 나와서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저는 부르심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주님이 나를 부르셨기에 이렇게 앉아 있지 부르지 않았다면,
어떻게 앉아 있겠습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름을 받았다면, 여러분이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 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를 부르심입니다.
그러면, 복음 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면,
vs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믿으면, 믿는대로 행동을 합니다.
믿는대로 행동하는 것이 믿어 순종하는 겁니다.
믿음은 뭐냐 하면, 쉽게 말하면,
믿음은 생각입니다.
내 생각이 그냥 믿어지는 겁니다.
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데.
그 분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데.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데.
이것이 그냥 생각 속에서 믿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그것이 그렇지 않아.
안믿어져.
내 생각에는 거짓말 같아.
내 생각에는 어떻게 죽은 자가 살아나.
내 생각에는 이 세상은 우연히 생긴거야.
등등... 생각이 성경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분들은 지금 믿음이 있는 분입니까? 없는 분입니까?
사실,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를 부르신 후에 나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바뀌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 편에서 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말씀을 암송해서 내 생각, 기억 속에 말씀을 새겨 넣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우리의 생각 속에는 말씀과 다르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 생각이 나의 믿음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생각, 불신의 생각, 욕심의 생각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과 다른 나만의 세상적인 믿음이었는데, 그 생각이 하나님의 믿음, 복음을 믿는 믿음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생각을 지워버리고 덮어버려야 하는데, 바로 말씀 암송으로 대체를 하는 것입니다.
머리에 말씀을 새겨 넣는 겁니다.
그러면, 내 머리 속에는 점점 말씀이 새겨지면서 나의 세상적인 생각이 점차로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말씀 암송을 하면 할수록 내 머리 속에 생각은 무엇을 더 많이 생각할까요.
말씀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머리에 새겨진 말씀이 마음에 새겨지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사실, 바울을 첫 믿음 갖기가 어려웠지
예수를 만난 후에는 믿음이 커지는 것이 일반인보다 수백배는 빠르게 커졌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요?
그는 모세 오경은 기본이고, 구약을 거의 다 암기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말씀이 머리에 가득차 있다가 바로 예수님과 연관을 시키니까
그것이 다 이해가 되는 겁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구약에서 예언한 말씀이 예수를 말하는 구나.
이렇게 금방금방 알아듣고, 그것이 믿음으로 자리를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쓰는 겁니다.
vs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것이 바로 구약이거든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복음으로 주님이 부르셨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 다른 성격과 취향과 환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육신적으로 그런 겁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바로 복음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사는 삶의 자리에서
믿음으로 사는 자가 되셔야 합니다.
믿음이 들어와야 믿음으로 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믿음이 들어오는 방법이 말씀 암송과 부르짖는 기도라고 누누이 강조하는 겁니다.
내가 말씀 암송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믿음으로 살게 됩니다.
그 증거가 무엇이냐?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넓은 마음으로 내 주위 사람들을 이해하며 산다는 겁니다.
응... 그래. 그렇구나.
그래... 그래도 돼.
아 알았어.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이러면서, 사람들과 다름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주님을 바라보며 살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말합니다.
너는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그럴 수 있어.
너도 내가 믿는 예수를 믿어봐.
그것이 뭐라구요.
바로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의 태도입니다.
여러분 안에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나는 복음을 위해서 예수님이 부르셨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은
말씀 암송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지... 라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신 예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