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의(義)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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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3장 6~9절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우리 신앙 생활에서 꼭 알아야 하고, 반드시 그 의미를 정확히 깨닫고 있어야 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은 태어나면, 잘되어야 합니다. 부요해야 하고, 풍요로워야 하고, 건강해야하고,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이 형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사람들이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① 소위 성공이라는 것을 왜 사람들이 바라는가?

 

그것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것을 무의식 가운데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하나님이 만드셨기에 하나님이 지으신 원리로 움직입니다. 그 지으신 원리대로 사람이 순종하며 맞추어야 잘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창조의 원리와 질서를 알아야 합니다.

 

② 하나님의 백성이 왜 망하는지 아십니까?

 

[호세아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이 지식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으신 원리에 대한 지식입니다. 수학지식, 경제지식,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만들었고, 어떻게 유지하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입니다. 그런데,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게 되었습니다.

 

③ 왜 하나님의 백성이 지식이 없게 되었습니까?

 

이 말씀을 가만히 살펴보면,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 우리가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지식을 버려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쓰레기처럼 취급했다는 겁니다.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너를 쓰레기처럼 내 동댕이쳐 버리게 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것은 비극입니다.

 

이 말씀은 신앙 생활하는 우리들이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왜 내가 망하게 되었는가?

왜 내가 잘되지 않는가?

왜 내가 힘들게 사는가?

앞으로 우리 자손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나님이 나의 자녀들을 잊어버리는 일들이 발생할 것인가?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내가 망하고, 자녀들이 망하고. 그 가정은 풍지박살이 나 버립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풍요롭게 지내시기를 원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자신 있게 나는 풍요롭고, 아름답고, 멋지게 될 자격이 주어졌는지 모릅니다.

 

[히 6:13~15]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그렇게 하나님이 맹세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아브라함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습니다. 이 약속이 우리에게도 주어졌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 3: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갈 3: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 이 복음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받는데,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면, 히브리서 614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약속 내 것입니다.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따라 해 봅시다.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우리는 자신있게 외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복주고, 나를 번성케 한다. 아멘~~~...

 

 

... 그러면, 한 가지 심각한 문제를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④ 여러분이 복을 못 받는 것은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것인데, 하나님은 복주고 우리가 번성하기를 원하는데, 내가 그렇게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자손이 못되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못되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못받는 겁니다. 그럼. 하나님의 의가 무엇이냐?

 

여러분, 하나님의 의가 무엇입니까?

 

이것을 정의내리기에 앞서서 성경에 나오는 의라는 것은 보통 의로운 사람, 의로운 행위 등을 일반적으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의롭게 보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은 누구를 의롭다고 하십니까? 여러분은 의롭습니까? 여기에 대한 명확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 곳곳에는 의로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시편 11: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시편 51:19]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
[시편 119:62]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
[시편 119:164]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이사야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마태복음 1: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시편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상과 같이 성경 곳곳에는 의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사람, 의의 길로 인도하시고, 주님의 의로운 오른손.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우리는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의를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의로운 자의 반대는 불의한 자입니다.

의가 없는 자를 말합니다.

 

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의롭습니까? 아니면 불의합니까?

 

이 질문은 보통 행위를 기준으로 하는 겁니다. 착한 행동을 하면 의롭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어느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서 자동차가 전복이 되었습니다. 자동차에 불이 붙었고, 곧 자동차가 불에 휩싸이게 됩니다. 자동차 안에는 사람이 기절해 있고, 그는 곧 불에 휩싸여 죽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용감한 시민이 자동차에 다가가서 그를 구해 냅니다. 그는 의로운 행동을 한 겁니다. 그것이 과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의 입니까?

 

아니면, 어떤 사람이 자기보다 약하고 힘이 없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때리고, 착취합니다. 그 사람은 불의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과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불의 입니까?

 

이것은 모두가 행동을 기준으로 삼아서 의롭다, 불의하다... 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도덕적 기준, 윤리적 기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준이라고 하면, 우리는 의를 행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을 해야 합니다.

 

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의는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행동을 의로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의로운 사람. 하나님이 보시는 의는

 

[갈 3: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시는 의입니다.

 

⑥ 하나님을 믿는 것. 하나님을 믿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고 있지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정말로 하나님을 믿고 있기나 한 겁니까? 아니면, 자신을 믿고 있으면서 하나님 믿는다고 착각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하나님의 의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것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지식이 없으면, 망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복주시려고 해도 복을 줄 수 없고, 번창케 하려고 해도 번창할 수가 없습니다.

 

⑦ 자. 그러면, 하나님의 의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는데, 아브라함은 무엇을 믿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겁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렇게 많이 나타나신 것은 아니구요. 몇 번 나타나셨습니다. 첫 번째 나타나신 것은 75세 때입니다. 그 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할 때, 아브라함이 그 말씀을 듣고 떠납니다.

 

[창 12:2~4]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4절에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라고 되어 있는데,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의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겁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였다고 하면, 하나님이 고향과 아비를 떠나라고 했을 때, 그는 떠나지 못했을 겁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라는 말씀으로 갈라디아서는 기록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것. 그래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갔고,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고 했을 때, 그런 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대로 행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로운 것이었습니다.

 

[창 15:4~6]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뭇별과 같이 많아지리라 할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의로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 여기서 잘 보면 이렇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에게는 아직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아직 가나안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믿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이 주시리라 했기 때문에 현재는 없지만, 아브라함이 그것을 믿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마음에는 이미 가진 자였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의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적용해 보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죄를 사하셨습니다. 여러분, 그것을 믿으십니까? 아멘~~~

 

그렇다면, 여러분은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을 믿으면, 여러분은 죄가 없습니다. 물론 또 죄를 짓겠지요. 죄를 지으면,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자의 자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믿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내게 주실 것은 하나님은 이미 다 이루신 겁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나타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뿐입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제 7일에 쉬셨는데, 하나님의 마음에는 이미 6일을 창조가 있었고, 더 이상 창조할 것이 없어서 7일에 쉬시기로 이미 정하셨습니다.

 

하루 창조하고, 좀 더 해야 겠네. 또 다음날 창조하고, 부족하니 좀 더 해야 겠네. 이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마음 속에 완전한 창조에 대한 설계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이미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과 연약함에 대한 대가를 모두 지불하셨습니다. 나의 가난과 저주를 해결하셨습니다. 원수 마귀를 이미 다 무찌르셨습니다.

 

이제는 우리 편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내게 이루어졌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고, 내가 믿기만 하면 됩니다. ? 십자가에서 이루신 모든 일들을 다 우리에게 주시기 위함이니까요.

 

[엡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엡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엡 1: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엡 1:18,19]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얼마나 큰 지를 우리가 알기를 바울은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 지식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지식을 갖기를 원합니다. 왜냐? 지식이 없으면 망하니까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알 뿐만 아니라 믿어야 합니다. 내게 주셨구나.

예수님이 내게 어마어마한 복을 주셨구나.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미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이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이미 부자이고, 이미 복 받은 사람이고, 이미 형통한 사람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을 때, 그 때에 바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겁니다.

 

[갈 3: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갈 3: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⑧ 어떤 복을 받습니까?

 

[히 6:13~15]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이것을 믿으십시오. 이미 여러분의 마음 속에 그것을 받은 사람처럼 행동하시고 말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복 주고 복 주며, 나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만나는 사람을 붙잡고,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셨어. 나를 번성하게 하셨어. 이렇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믿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더 많이 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믿음으로 고백할 때, 그것을 하나님은 의롭다고 보시는 것입니다.

 

절대로 믿음 없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나는 복받을 거야... 아닙니다. 하나님 내게 복 주시옵소서..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이미 여러분은 복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 내게 복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렇게 고백을 해야 하나님께 의로운 자로 여김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내게 무엇을 이루셨는지 볼 수 있는 눈이 열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북한산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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