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1장 22~27절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우리가 지금 신앙 생활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예배 환경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대면 예배보다 비대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엄청난 예배 환경의 변화입니다. 그러나 변화된 환경이 중요하기를 하지만, 그 환경을 지배하는 것은 곧 믿음입니다.
사실, 믿음이 견고하다면, 환경이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겠지요.
예를 들어서,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니까? 여러분, 남편을 사랑하십니까? 내가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는 믿음... 그것이 환경에 따라 바뀐다고 해 봅시다. 그 믿음은 사실 일편단심의 믿음이 아니겠지요. 이것은 바람피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내가 떨어져 있어도 변하지 않고 나만 사랑한다는 것.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며 믿음입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이 바로 이런 믿음입니다.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코로나와 같은 상황 가운데서도, 예수 믿으면 죽이겠다는 상황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순교자의 정신으로 변함없이 주님을 바라보며 내 삶에서 주님께 예배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진정한 믿음의 삶입니다.
① 그럼. 내 안에 이런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이 있습니까?
우리가 사실 언제든지 예배 드릴 수 있는 상황 가운데서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배 못드리는 상황이 온다면,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이 드러나겠지요.
여러분, 솔로몬의 판결이라는 유명한 일화가 있지요. 어떤 동네에 두 엄마가 있었는데, 마침 한날 한시에 각각의 엄마가 아기를 낳은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A라는 엄마가 잠을 자다가 잠결에 아기를 누르게 되어 아기가 죽게 됩니다. 그 때, A라는 엄마는 너무나 당황해서 몰래 옆 집 B 엄마의 아기와 바꿔치기를 합니다. B 엄마는 깨나 보니까 자기 아기가 아니고 또 죽어 있어서 당황해서 옆집 A 엄마의 얘기를 보니까 자기 아기인 겁니다. 그래서 서로 산 아이가 내 얘기다라고 싸우게 된 겁니다.
해결이 안나자, 솔로몬 임금 앞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서로 자기 아기라고 주장하고 우기니까. 솔로몬이 이렇게 판결을 합니다. 그러면, 죽은 아니도 반을 나누고, 산 아기도 반으로 나눠서 공평하게 가져라... 그러니까. A 엄마는 당연하신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그래서 군사들이 칼을 가지고 와서 아기를 반으로 가르려고 하니까.
B 엄마가 다급했는지... 제발 가르지 말라고, 산 아기를 A 엄마에게 주라고 외쳤습니다. 그 때, 솔로몬이 말합니다. 잠시 멈추어라... 그리고 산 아기를 B 엄마에게 주고, 죽은 아기를 A 엄마에게 주라... 이렇게 판결을 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신하들이 “솔로몬 임금님, 도대체 왜 그런 판결을 내리셨습니까?” 하고 묻자. 생각해 봐라.
죽은 엄마의 아기를 내 아기가 죽었으니 옆집 산 엄마의 아기가 얼마나 부러울 거냐. 그러니까 옆집 산 아기를 죽여도 자기를 손해 볼 것이 없지 않느냐 그런데, 산 아기의 엄마는 아기가 죽으면, 평생 못 볼 것 아니냐. 엄마의 사랑은 산아기를 죽이지 않기에 차라리 옆집 엄마에게 주드라도 아기를 살리려는 마음이 있던 거다.
[왕상 3:26,27] 그 산 아들의 어머니 되는 여자가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청하건대 내 주여 산 아이를 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다른 여자는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
27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의 어머니이니라 하매
이것이 바로 환경에 따라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자녀가 내 품에 없어도 죽는 것보다는 살아 있어야 내가 계속해서 볼 수 있으니 자녀를 향한 엄마의 뜨거운 사랑은 이렇게 증명이 되는 겁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도 깊은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실 말씀도 이와 같습니다. 너무나 우리의 상황과 똑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약 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보통 사람들은 말씀을 잘 듣습니다. 그런데, 듣기만 할 뿐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말씀을 잘 지키는 척 하면서 살아갑니다. 사실은 아니면서...
우리 나라나 동양권 유교문화에 있는 나라들이 특히 심합니다. 이것을 체면 문화라고 보통 부릅니다. 체면 때문에 자신을 속이는 것이지요.
조선 시대에 양반은 상류층입니다. 양반은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양반이면서도 가난한 양반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양반인데, 가난하니 얼마나 챙피합니까? 평범한 평민도 저녁이면 밥을 해 먹는데, 자신은 양반이면서 먹을 쌀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물을 실컷 먹고, 배를 두드리면서 큰 소리로,
“아~~~... 잘 먹었다.”
“오늘 산해진미로 배터지게 먹었네...”
하면서 거들먹거리면서 걷는 양반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뱃 속은 배고파서 밥 달라고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 배가 고파 죽겠는데, 국밥 한 그릇 사 먹을 돈이 없지만, 체면 때문에 배고프다고 말은 못하고 사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체면이 뭐라고...
여러분, 우리는 신앙 생활을 잘 하셔야 합니다. 내가 아닌데, 그런 척하면서 사시면 정말 안됩니다. 믿음이 없는데, 믿음이 있는 척하시면서 사시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데, 말로만 하나님 사랑하고, 실제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하는 척하시면서 사시면 안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면서 제일 싫어했던 부류가 있었습니다. 바로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사두개인들,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그들에게 정말 심한 욕을 했습니다.
[마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마 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 23:25,26]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마 23:27,28]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하면서 저주에 가까운 말을 하시면서 아주 심한 말을 쏟아 내셨습니까? 그 이유는 외식 때문입니다.
② 외식이 무엇입니까?
외식은 헬라어로 ‘휘포 크리테스’ 라고 부르는데, 극장에서 연기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드라마 주인공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드라마 속에서 아주 못된 연기를 하게 되면, 드라마를 보면서, 그 사람을 욕합니다. 아니 저런 놈이 다 있어... 그러면서 감정을 이입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주인공이 실제로도 아주 악한 사람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는 그런 사람이 그렇게 행동도 안하고 그런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연기는 연기일 뿐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외식하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마치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속에는 아주 더럽고, 불법이 가득차있는데, 마치 자신은 거룩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척 사람들에게 보인 겁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지적을 하신 겁니다.
이런 사람을 요즘 현대적인 말로 풀이를 하면 이중인격자라고 말합니다. 이런 이중인격자, 소위 외식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마 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지옥의 판결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중 인격을 가진 사람은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지옥에 갑니다. 이것은 제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외식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아셔야 합니다. 이것을 야고보서에는 이렇게 기록한 겁니다.
[약 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교회에 오래 다니신 분들은 아는 것이 정말로 많습니다. 성경의 구석구석 아주 잘 압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는 것에 그치고 만다는 겁니다.
③ 아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더 중요한 것은 알았다면,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제가 말씀 암송에 대해서 참 많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우리 성도님들이 암송을 잘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리고, 또, 성도님들이 말씀을 사랑하고 실천하고 있구나... 하는 것에 느낍니다.
그런데, 해야지 하면서 안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언제 하시려고 하십니까?
저는 학생들을 보면서 이런 거짓말을 자주 들어 보았습니다.
공부해야지... 다 알아요. 그런데, 하지 않습니다.
운동해야지... 운동하면 건강하다는 것... 다 알아요. 그런데, 하지 않습니다.
왜 아픕니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 운동 안해서 그런거지요.
먹지 말아야지... 다 알아요. 그런데, 하지 않습니다.
감사해야지... 다 알아요. 그런데, 하지 않습니다.
기도해야지... 누군 몰라요. 그런데,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는 것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겁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아는 것을 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면, 사실, 성경에 의하면, 믿지 않은 사람을 말합니다.
무슨 말이예요. 나는 교회도 다니고, 하나님도 믿고, 성경도 알고, 나는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구요. 정말 그렇습니까?
귀신도 교회에 들어올 수 있고, 하나님도 계심을 믿고, 성경도 알고. 그런데, 귀신은 천국을 못 갑니다. 왜요? 말씀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알기는 기가 막히게 하는데, 문제는 기가 막히게 말씀대로 살지 못합니다. 이 사람은 천국에 갑니까? 못갑니까?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신앙 문제입니다.
내가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서 내가 말씀을 아는 것만으로 마치 내가 말씀대로 사는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것. 이것을 빗대어서 야고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약 1:23~25]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여러분, 나오실 때 거울을 보고 오셨죠. 지금 여러분 얼굴 모습이 기억이 나십니까? 안 나시죠. 저도 기억이 안납니다. 지금 종이를 나누어 드리고, 여러분의 얼굴을 그려보세요. 그러면, 아마 제대로 그리는 분 아무도 없을 겁니다. 왜요? 잊어버린 겁니다. 그러다가 거울을 보면, 아 내 모습이 이랬지. 그렇게 50년, 60년, 70년, 80년을 보내셨습니다. 아니 왜 50년 넘게 거울을 보셨는데, 자신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참 이상하지요. 그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말씀을 보니까.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이 꼭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다고 비유합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해라.
말씀대로 살아라...
이것이 성경의 핵심입니다. 이것은 말씀을 믿어라. 고 바꾸어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믿은 바 대로 행합니다. 믿지 못하면, 절대로 행하지 못합니다.
믿지 못하는 이유는 생각입니다. 머리 속에 말씀을 생각하지 못하는 겁니다.
내 생각 -> 믿음 -> 행함.
④ 말씀을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약 1: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 성경 말씀을 보고 있는 자.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그럼 뭐하라는 겁니까?
잊어버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실천해라. 뭐를 실천해요.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라는 겁니다. 즉, 말씀을 암송하라는 거지요.
그런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무엇을 받습니까?
복을 받으리라.
사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시는 복 받기 참 쉽습니다. 뭔지 아세요. 말씀 암송하시면 됩니다.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으면 됩니다. 이것은 신앙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말씀 암송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이 너무나 무기력한 겁니다. 이중인격을 가진 자라고 비난을 받습니다. 그럴만도 하지요. 사랑은 오래 참는데, 신앙인 중에 오래참지를 못합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성내지 않는데, ㅈㄱㅎ 목사님 같은 경우는 무례하고 성냅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욕을 먹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만 다니면,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천국갑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이시니까 말씀을 믿어야 하고, 말씀을 믿는 것은 곧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은 참 쉽습니다. 내 생각이 말씀을 믿으면 됩니다. 말씀을 믿는 것은 참 쉽습니다. 말씀을 암송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암송하면, 저절로 내 생각이 말씀으로 대치가 되고, 생각이 말씀으로 대치가 되니까 말씀을 믿게 되고, 말씀을 믿으니까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은 복을 받는 겁니다.
자신이 복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말씀을 듣고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왜 하나님은 내게 복을 안주시는지 몰라 하면서 걱정, 근심,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안주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말씀을 믿지 못하고 있고, 내가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있고, 내가 말씀을 암송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실 수 없는 겁니다. 모든 문제는 바로 내게 있습니다.
그런데, 복 받는 사람들 앞으로 보십시오. 우리가 이제 암송한지 일년이 돼가는데,, 1년에 150구절, 4년, 600구절. 이것이 기초인데, 이것을 꾸준히 잘 하시는 분들은 어마어마한 일들이 생길 겁니다. 저절로 복이 굴러들어올 겁니다.
무슨 복을 그렇게 강조하느냐, 세속주의 같은 것이 아니냐 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럼, 예수 믿고 나서 복 못 받고 저주 받아야 합니까? 성경에 복에 대해서 몇 구절이나 나오는지 세 보셨습니까?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예수님도 우리의 저주를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왜요? 우리가 저주 받지 말고 복 받으라구요.
여러분,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외식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이중인격자가 되지 마십시오. 잘 못해도, 느릇느릇 가도, 조금 천천히 가도, 말씀 암송하는 것은 놓치지 마십시오.
그리고 깨어 기도하라고 했으니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말씀 암송과 기도.
이것이 바로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을 받는 유일한 비결임을 꼭 기억하시고 말씀을 모르면서, 말씀을 아는 척하고 살지 말고, 말씀을 암송하면서, 콕 찌르면, 줄줄줄 말씀이 암송되어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