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율법 - 2020년 추수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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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2 5~13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오늘은 추수 감사절 예배로 주님께 드립니다. 한 해 동안 주님이 주신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면서 찬양하고, 물질로 그 마음을 표현하는 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에는 감사가 떠오르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감사에 대한 마음을 담아 입으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삽니다.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아니 내 삶에 모든 일이 다 주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가 모를 뿐입니다.

 

이것이 점점 깨달아지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영의 눈이 열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 믿음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주님의 크신 은혜가 점점 내게 오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일 년 동안 내가 어떤 은혜를 입었는지에 대해서 깨달으시고, 주님께 감사의 생활을 늘 해 나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12절을 보면 보면 이렇습니다.

 

[약 2: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우리에게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 심판은 마지막 심판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인생을 다 마치고,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의 인생의 결산을 할 때입니다.

 

[고후 5:9,10]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하는 고소 내용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소 내용이 무엇입니까?

 

① 심판대 앞에서 무슨 심판을 받아야 합니까?

 

그것이 바로 자유의 율법입니다.

 

[약 2: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자유의 율법을 지킨 자는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자유의 율법을 어긴 자는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심판 받지 않으려면, 이것을 잘 이해하고 있으셔야 하고, 자유의 율법을 어겨서는 안됩니다.

 

② 자, 그러면, 자유의 율법이 무엇입니까?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말씀의 구조를 좀 보아야 합니다. 자유의 율법이라는 것은 좀 어긋나 보입니다. 왜냐하면,

자유라는 것은 마음대로 하는 것이고, 율법은 어떤 규칙, 법칙, 질서, 규율를 뜻하는 것인데, 율법은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구속의 개념입니다. 정해진 법칙이니까, 그 범위를 벗어나면 안되는 것입니다. 자유와 율법은 서로 모순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유롭게 살라. 그러나 법을 지켜야 한다. 이런 것이지요.

 

창과 방패가 있습니다. 창은 어떤 방패를 다 뚫어 버리는 만능의 창입니다. 방패는 어떤 창을 다 막아내는 만능의 방패입니다. 이런 창과 방패가 만났습니다. 만능의 창을 든 사람이 만능의 방패를 든 사람을 찔렀는데, 만능의 방패를 든 사람이 찔러오는 만능의 창을 만능의 방패로 막았습니다. 그러면, 창을 가진 사람은 뚫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방패를 가진 사람은 막을 수 있을까요? 이것이 모순입니다.

 

율법을 지켜라 하면, 우리는 안지키면 큰 일이 납니다. 안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 중에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아휴... 얼마나 답답하냐... 내가 그 좋아하던 것도 못하고... 예를 들어서, 교회 안 다닐 때는 술도 마음껏 먹어도 괜찮았는데, 교회에 다니면, 내가 좋아하던 술을 못 먹으니 교회에 나오고 싶겠습니까? 그래서 술을 못 끊으니, 교회에 못 나오겠다. 이러는 겁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해도 그것이 가장 힘든 일입니다. 율법이 있는데, 그것을 지켜야 하는데, 지키지 못하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 지키려고 하니 지키고 싶지 않고, 안지키려고 하니 찜찜하고... 그래서 율법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정죄를 합니다. 판단을 합니다

 

너는 이것을 지켰지, 너는 지키지 않았지.

 

자신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남을 판단하고, 정죄를 합니다.

 

우리가 앞에서 말씀 드린 사람을 차별하는 것. 부자와 거지를 차별하는 것.

이것도 다 율법입니다. 부자는 귀하고, 거지는 천하다. 이것이 율법입니다. 누구의 율법입니까... 세상의 율법, 자기의 율법입니다. 자기가 곧 법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판단하고, 차별하고, 정죄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모릅니다.

 

추수 감사에 감사의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 사람은 다 여기에 속합니다. 율법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했는데, 무슨 감사가 나옵니까...

 

한 달간 죽어라고 회사에서 일해서 봉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이 봉급은 내가 은혜로 주는 거야 하고 사장이 줍니다. 그러면서, 너 내가 주는 봉급 고맙지... 고마워 해야 해... 이럽니다. 이 사람은 얼마나 열 받았는지 모릅니다. 고맙기는 왜 이것이 수고비입니까. 내가 일한 대가이지, 노동의 대가이지. 내가 왜 사장이 주는 봉급에 감사해야 합니까. 당연히 죽도록 일한 것에 대한 대가이지. 내가 회사가 시키는대로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아냐... 회사의 법을 지키느라 아주 고생했지... 그러면서, 봉급에 대해서 감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법입니다. 법은 지켜야 하는 것이기에 아주 마음에 부담이 크고, 지킨다고 해서 감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좀 더 쉽게 설명을 해 볼까요?

여러분, 교통 질서를 지키시죠. 건널목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 졌습니다. 그 신호등의 규칙에 따라서 사람들이 건너 갑니다. 법을 잘 지킵니다. 그러면, 그 법을 잘 지켰다고 감사가 나옵니까? ... 하나님, 저는 신호등 잘 지켰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럽니까?

 

아니면, 대한민국 국가는 알라 내가 건널목을 건널 때, 녹색불일 때, 건넜지. 그러니까. 너는 내게 감사해야 해. 이럽니까? 아니지요. 아마 그랬다가는 정신병원에 끌려 갈 겁니다. 당연히 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율법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겁니다. 안지키면, 그것이 곧 심판입니다.

이것이 법의 특징입니다.

 

법을 지키는 것은 감사가 없습니다. 일 년 동안 하나님 법을 지키려고 애쓰셨다면, 아마 감사가 없을 것입니다. 교회에 의무적으로 나왔다면, 기도를 의무적으로 했다면, 헌금을 의무적으로 법을 따라 했다면, 아마 감사가 없을 것입니다. 회사를 당연히 다녔고, 세 끼 식사를 당연히 먹었고, 병원에 당연히 다니지 않았고, 내가 그래도 뭔가 좀 노력해서 열심히 해서 법을 지켰다면, 거기에 무슨 감사가 나오겠습니까? 그것이 율법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백성들은 감사가 없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율법을 지키느라, 하물며, 예수님까지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시기와 분노가 가득했습니다. 왜요? 저 사람 법을 안 지킨다고... 화가 났습니다. 혹시 화를 내신 적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 법 때문에 그런 겁니다. 율법주의자입니다. 법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는 감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율법을 이야기 하지만 또 다른 이야기도 합니다.

자유의 율법...

 

[약 2: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율법이기는 한데, 자유의 율법입니다. 자유는 헬라어로 “엘류데리아” 라고 부르는데, 엘류데리아는 노예의 신분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노예를 마음대로 할 자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노예가 아닌 사람은 마음대로 할 자유가 있습니다.

 

밥을 먹고 싶을 때 먹는 것... 이것이 자유입니다. 노예는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없습니다. 누가 먹으라고 해야 먹습니까

주인이...

 

자유는 지키고 싶을 때 지킬 수 있지만, 안지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예는 주인이 말할 때 거부할 수 없습니다. 안하고 싶어도 해야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고 비참합니까...

 

그런데, 예수 믿는 우리에게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롬 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고후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자유는 스스로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오고 싶으면 오고, 안오고 싶으면 안와도 됩니다. 그것이 자유입니다. 좀 더 신학적으로는 선택의 자유... 라고 보면 좋겠지요. 이것, 저것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겠지요.

 

③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뭐라구요?

 

자유라구요. 이 자유는 얼마나 우리가 감사한 것이지 모릅니다.

왜 그럽니까?

 

회사에서 사장이 불러서 말합니다. 너 출근하고 싶은 시간이 언제야 마음대로 출근해. 정말 그래도 돼요? 얼마나 고마워요. 너 한 달에 40시간은 일해야 해.. 라고 규칙이 있는데, 너 만은 자유롭게 일해. 월급은 같애... 그리고 정말로 한 달에 집에 무슨 일이 생겨서 10시간만 일했는데, 봉급을 주는데, 계약한 대로 40시간 일한 월급을 주는 거예요. 여러분, 이런 사장님이 있다면, 얼마나 고마워요.

 

이렇게 자유로운 회사도 없을뿐더러. 이런 회사가 있다면, 여러분 같으면, 설렁설렁 일 할까요? 아니면, 열심히 일할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자유를 주셨습니다. 믿기만 해라. 그러면, 구원을 주겠다. 내가 아무 것도 안 했는데, 믿기만 하니까. 영생을 주신 겁니다. 얼마나 고마워요.

 

내가 교회에 나와서 기도 조금 했는데, 일 년 동안 먹고 살 것을 주셨어요. 얼마나 고마워요.

 

내가 예배를 조금 드렸는데, 드리고 싶어서 하나님은 그것이 너무나 이뻐서 일주일 내내 나를 지켜주셨어요. 얼마나 고마워요.

 

내가 주님께 드리고 싶어서, 하고 싶어서 조그만 감사 예물을 드렸는데, 하나님이 내게 쓸 것 입을 것 먹을 것. 일년 내내 다 챙겨주셨어요. 얼마나 고마워요.

 

그래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자유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 그러면, 이 둘을 합쳐 보겠습니다.

자유의 율법.

율법은 법을 지켰야 하니 감사가 없지요. 자유는 마음대로 했더니, 감사가 있지요. 그러니까. 자유의 율법은 내가 마음대로 하기는 하는데, 하나님이 정하신 테두리 내에서 마음대로 해라. 이 뜻입니다.

 

교회에 나오기는 나오는데, 아무 교회나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교회에, 내가 심겨진 교회에 나가라. 이런 이야기 겠죠. 추수감사예물을 드리는데, 마음에 감동이 오는데로,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깨닫는데로, 그 만큼만 해라. 이런 이야기겠죠.

 

그러면, 성령의 감동을 거스르면, 그것이 바로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을 받는 겁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따르고자 하는 마음.

자유의 율법대로 행하고자 하는 마음.

내가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

이것의 근본 원리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보호하시고 지켜주시고, 인도하시며,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고 감사드리고 헌신하고 기도하는 겁니다. 그래서 법 중에 최고의 법은

 

[약 2: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사랑은 하나님의 법 중에 최고의 법입니다.

우리가 추수감사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④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얼마나 사랑하시느냐?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시기까지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시고, 앞으로도 사랑하실 겁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그 사랑을 깨닫게 되면, 점점 내 이웃을 사랑하게 되어져 있습니다.

 

부자가 가진 재물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신 것이요. 가난한 자가 못 가진 재물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안 주신 것입니다. 사실은 가난한 자는 하나님이 안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거부한 것이 더 옳다고 봅니다. 예수 믿으면, 잘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기 전에 가난한 사람이 예수 믿으면, 금방 부자가 되느냐? 아닙니다. 자유의 율법에 대해서 배워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배워나가야 합니다.

왜냐?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그래서 가난한 사람은 암송을 엄청나게 하셔야 합니다. 말씀의 지식을 쌓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한 자도, 그 부를 유지하기 위해서 말씀의 지식을 쌓아야 합니다. 암송해야 합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일년 동안 우리에게 주신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내가 얼마나 자유의 율법대로 살았는지에 결정이 되고, 내게 주신 하나님께 한 것이 별로 없는데, 주님이 내게 주신 자유를 가지고, 내가 조금 주님께 섬겼는데, 주님은 내게 얼마나 크신 은혜를 주셨는지 깨닫는 것에서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올 한 해, 주님이 여러분에게 얼마 만큼을 주셨습니까?

여러분은 한 것이 무엇입니까?

당연히 법을 지켰으니 감사가 없습니까?

아니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까?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자유의 율법대로 우리가 말하고 행할 때 ,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주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릴 때, 이것이 곧 심판의 자리에서 주님이 판단하시겠다는 겁니다.

 

오늘 나의 말과 행위가 결국은 영원 세계에서 우리의 심판으로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기쁘기도 하며, 또한 두렵기도 한지요.

 

저는 여러분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심판대 앞에서 주님이 너무 심각하게 너는 그게 뭐니... 라는 말보다는

 

심판대 앞에서 주님이 너무 기뻐서, 너는 참 잘했다. 이런 소리를 들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찬양 하나 부르겠습니다.

감사해요. 주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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