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2장 14~17절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요즘은 코로나의 역설의 시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데,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합니다. 이것을 역설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소리없는 함성... 이런 것입니다. 함성은 소리가 있는데, 소리가 없는 함성은 도대체 소리가 있다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까?
코로나 시대의 역설이 바로 이런 겁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음식을 먹을 때는 마스크를 벗어야 합니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마스크를 써야 합니다. 대중이 모이는 곳에는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합니다. 그러면, 대중 식당에서는 마스크를 써야 합니까? 벗어야 합니까?
살기 위해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마스크를 벗고 먹어야 하는데, 코로나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마스크를 벗으면 안됩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이것이 우리가 처한 코로나 시대의 역설입니다.
옆 사람이 코로나가 걸렸는데, 증상이 없습니다. 무증상 환자와 밥을 같이 먹었습니다. 그러면, 내가 걸릴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 놈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얼마나 답답합니까?
저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사람들이 무서워합니다. 그래서 마스크를 꼭 껴야합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도 마스크를 꼭 끼셔야 합니다. 여러분, 예배 중에 절대로 벗으시면 안됩니다.
①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놈이 있습니다. 그 놈이 어떤 놈인지 아십니까?
바로 마귀라는 놈입니다.
제가 놈이라고 해서 좀 불편하신지요. 그럼, 마귀 님이라고 할 수도 없고, 마귀 씨라고 할 수도 없고, 그냥 마귀 놈이라고 하는 것에 좋지 않을까요... ㅎ.ㅎ
어째든 마귀, 귀신은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놈도 무서운 놈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더 무서운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는 육체를 괴롭히고, 아프게 하고, 병들게 하지만, 마귀는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간다는 사실입니다. 뭐가 더 무섭습니까? 코로나입니까? 마귀입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코로나는 무서워하면서 마귀는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성경에 나옵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 부자는 그 해에 농사를 너무 잘 돼서 풍년이 들어 엄청난 곡식을 거두었습니다. 창고를 넓히고, 여러해 쓸 물건을 잔득 쌓아 놓았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눅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부자는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이제는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면 됩니다. 그런데, 역설이 나옵니다. 그 물질이, 그 돈이, 그 건강이, 그 창고에 쌓이 것들이 죽은 후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고, 또 더 안타까운 것은 이겁니다.
[눅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오늘 밤 하나님이 오셔서 네 영혼을 도로 찾으면, 즉 생명을 거두어 가면, 그 준비하느라 고생한 것을 다 놔 두어야 하고, 또, 더더 안타까운 것은
[눅 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땅에 쌓아 두었는데, 하나님께 대해서는 인색했기에 하늘의 상급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② 무엇이 더 무섭니까? 돈이 없는 것이 무섭습니까? 아니면, 하늘 나라에 상급이 없는 것이 더 무섭습니까?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늘 나라의 상급이 뭐가 중요하냐요?
사람들은 말합니다.
귀신이 어디 있냐고?
지옥이 뭐가 중요하냐고?
코로나가 더 무섭지, 귀신이 뭐가 무섭냐고... 지금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지, 저 세상에서 어떻게 살지가 뭐가 중요하냐고.
여러분은 어느 쪽에 속합니까?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오늘 본문이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 믿음과 죽은 믿음.
따라해 봅시다.
산 믿음과 죽은 믿음.
③ 여러분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에 보시면
[약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즉, 죽은 믿음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죽은 믿음이 있다면, 산 믿음도 있겠지요. 산 믿음은 무엇이겠습니까?
행함이 있는 믿음.
그래서 우리는 두 가지 믿음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
행함이 있는 믿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 행함이 있는 믿음은 산 믿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야고보서와 성경을 볼 때에
④ 성경은 행함을 강조합니까? 믿음을 강조합니까? 행함이 중요합니까? 믿음이 중요합니까?
성경은 행함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실 때, 절대로 오해를 하시면 안됩니다. 행함을 생각하시게 되면, 잘 가시다가 삼천포로 빠지게 됩니다. 성경은 믿음을 강조하지 절대로 행함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즉, 믿음이 없다는 것은 곧 죽은 믿음이라는 뜻이지요.
성경은 우리가 무엇을 행하느냐? 무엇을 행하지 안느냐? 여기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느냐? 믿음이 없느냐? 여기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 더 이해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약 2:14~17]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자... 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신은 믿음이 있다라고 생각을 하는데, 행함이 없어요. 그러면, 그 사람은 믿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믿음이 없다는 겁니다. 믿음이 없다라고 하면 좀 그렇고. 이 사람의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즉, 죽은 믿음이라는 겁니다.
“죽은” 이라는 뜻은 헬라어로 “메크로스” 인데, 시체라는 뜻입니다. 시체의 믿음. 믿음이 시체이니... 당연히 행할 수가 없지요. 시체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냥 썩은 내만 나지요. 어떤 행위도 할 수 없습니다. 왜요? 시체니까요.
여기서 하나님이 강조하시는 것은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라는 겁니다.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산 믿음을 가지라는 겁니다. 그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양식이 없는데,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을 오해해서 구제해라. 이렇게 해석하시면 안됩니다. 구제하는 것이 믿음이다. 이렇게 정의 내리셔도 안됩니다. 이것은 단지 비유입니다.
⑤ 무엇을 비유하는 겁니까?
산 믿음을 가지라고 하는 비유입니다.
물론, 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겠지요.
그런데,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준다고 해서 그 사람이 산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것이 이겁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베푼다. 먹을 것을 준다. 자... 봐라. 내가 노숙자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나누어 준다. 성경에 있는대로, 나는 한다. 그러니 나는 믿음이 있다. 너희들은 그런 것도 안하고, 믿음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느냐...
그러면서,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가 하면, 어떤 행위를 기준으로 믿음을 평가합니다. 어떤 행위를 하면, 믿음이 좋고, 어떤 행위를 하지 않으면, 믿음이 나쁘고... 여러분, 성경이 정말로 그렇게 말합니까?
이 말은 곧 무슨 말인가 하면,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카톨릭에서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주장입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수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구원받지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의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믿음으로 삽니다. 믿음으로 자녀가 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고,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고, 믿음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을 아주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⑥ 자, 그런데, 우리가 산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산 믿음을 가지게 됩니까?
그것이 중요합니다. 산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아브라함이 자식을 바쳤듯이 우리도 자식을 바칠 수 있고, 우리 생명도 바칠 수 있습니다.
믿음도 없는 사람에게 자식 바치라 하면 이것은 미친 짓입니다. 믿음도 없는 사람에게 생명도 바치라 하면, 이것은 정신 병자입니다. 믿음도 없는 사람에게 가난한 사람 도우라 하면, 그걸 왜하냐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자, 살아 계신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는 하지 말라고 해도 합니다. 왜요? 살아 있으니까요. 마치, 살아 있다면, 배가 고프면, 누가 먹지 말라고 해도 먹지 않습니까? 먹는 것이 자연스럽고, 또 즐거운 일입니다.
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기도 하지 말라고 해도 하고, 예수 이름 부르지 말라고 해도 부르고, 예배 드리지 말라고 해도 드립니다. 왜요?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즐거운 일이니까요.
그런데, 죽은 믿음은 아주 죽을 맛입니다. 왜요? 죽어 있으니까요. 내가 할 힘이 없는데, 하라고 하니 얼마나 힘듭니까. 시체한테, 너 저리로 좀 움직여 봐. 아무리 말한다고 해도, 스스로 움직입니까? 아니요. 절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 원리를 이해하셔야 합니다.
자. 그러면, 산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어떻게 산 믿음을 가지게 됩니까?
⑦ 여러분, 믿음을 갖는 비결이 뭡니까?
이거 모르면, 여러분, 정말 큰 일 납니다. 믿음 갖는 방법도 모르고, 신앙 생활을 하다니. 도대체 내가 뭘하는지도 모르고, 교회 다니고 있다니... 얼마나 황당합니까?
믿음 갖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리라. 여기에 비결이 나옵니다. 입으로 시인해서 구원에 이릅니다. 즉, 믿음은 입으로 시인할 때, 이루어지게 됩니다. 믿음이 어떻게 자라느냐? 입으로 시인하면서 구원의 역사가 날마다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무엇을 믿고, 무엇을 시인해야 합니까?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믿고, 말씀을 시인해야 합니다.
이것을 쉽게 말하면, 성경 암송입니다.
[약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이 말씀을 자세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자... 성경은 지금 무엇을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행하라고 하지요. 무엇을 행하라는 겁니까?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라는 겁니다. 자기를 구원하는 믿음을 가지도록 행해라는 겁니다.
구원하는 믿음은 어떻게 갖습니까?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해가 되십니까? 다시 쉽게 풀어서 정리를 하면 이렇습니다.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즉, 만일 사람이 교회 다닌다고 하고,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고,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으면, 즉, 말씀을 입으로 시인하지 않으면, 즉, 말씀 암송을 하지 않으면, 말씀 암송하고자 하는 믿음이 없으면, 말씀 암송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구원하지 못한다는 뜻이지요.
하나님이 백성이 왜 망합니까?
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망합니다. 그래서 말씀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래야 복이 임합니다. 그래야 믿음으로 행하게 됩니다. 이것은 제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자 여러분, 지난 주에 빌립보서를 암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카톡방에 들어오셔서 오늘부터라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이 번주에 다시 한 번, 빌립보서 1장 1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에 목숨을 거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이 살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믿음으로 산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어야 살지요. 믿음이 어린아기라서, 그렇게 살도록 놔 두세요. 그러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이 땅에 살면서, 믿음을 크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요. 그렇기 때문에 암송을 강조하는 겁니다.
여러분, 다시 시작하십시오. 그것이 살 길입니다. 암송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은 마귀의 전략입니다. 왜요? 복 못받게 하기 위한 것이지요. 망하게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를 쓰고 암송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서울 열방 교회는 말씀으로 철저하게 무장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