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교회에 다닌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삶을 살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그 방향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눌리고, 억압당하고, 기쁘지 않고, 감사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실제적인 천국의 기쁨도 못 누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해도 그 끝이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심각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반드시 우리는 주님 앞에 서서 우리가 한 일에 대해서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의 올바른 방향은 이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죽으셨다가 삼일반에 부활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만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그 분이 나와 함께 계심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옆에 계심을 느끼지 못하니까 어떤 분들은 “그냥 믿어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의 문제는 믿어져야 믿지요.
반대로 생각해보면, 왜 살아계신 예수님이 옆에 계심을 못느끼는지요?
예수님이 살아계시다면, 살아계신 주님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어떤 부모에게 자녀가 있는데, 자녀가 옆에 있다면 자녀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왜요?
살아 있고 옆에 있으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살아계시다고 고백을 하면서, 왜 옆에 계심을 못 느끼는지요.
또 예수님이 옆에 계시다면, 당연히 그 분을 사랑하고, 그 분의 눈치를 보고, 그 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삶을 사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런 일들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 방법을 모를 뿐이지, 내 옆에 계신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옆에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예수님이 하라고 하신 일들(사역들)을 열심히 나름대로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합리화하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마르다의 일보다 마리아의 주님 옆에 앉아 있음을 더 좋아하셨습니다.
우리는 내 옆에 계신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해야 하며, 그것을 기본으로 우리의 모든 삶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종교 생활을 하면서 그것이 신앙 생활이라고 하면 안됩니다.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그것은 우리 삶에 기쁨과 안식과 평안과 행복과 감사와 자유가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예수님은 절대로 우리를 강제로 일하게 하시거나 억압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누군가 나를 억압한다면, 거기에는 예수님이 안계십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로 남을 억압하거나 강압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교만하니까 자기 말을 안듣는다고 억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그것이 우리 신앙 생활의 목표이며 방향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