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본질과 열정: 당신의 믿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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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깊숙이 자리한 근본적인 원리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떠 하루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수많은 믿음의 행위를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의자에 앉을 때 그 의자가 내 무게를 지탱해 주리라는 믿음,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그 음식이 안전하리라는 믿음, 월급날에 회사가 약속된 보수를 지급하리라는 믿음 등, 우리의 일상은 보이지 않는 믿음의 실로 촘촘히 엮여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에는 반드시 그 대상이 존재합니다. 그것이 나 자신이 될 수도, 타인이나 특정 사물이 될 수도 있으며, 때로는 돈이나 권력, 사회 시스템과 같은 무형의 가치나 환경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지속성에 대한 기대'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대상이 현재의 상태를 넘어 미래에도 변치 않고 그 가치와 약속을 지켜주리라 기대합니다. 사람이 아플 때 자신의 몸을 의사에게 맡기는 것은, 그 의사의 전문 지식과 경험이 나의 병을 고쳐줄 것이라는 믿음, 즉 치료라는 결과가 이루어질 때까지 의사의 역할이 지속되리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수백 톤에 달하는 거대한 비행기에 몸을 싣고 창공을 가로지르는 것 역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비행기가 추락하지 않고 안전하게 나를 데려다줄 것이라는 기계와 조종사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가장 숭고한 인간관계인 결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남녀가 서로의 평생을 약속하며 가정을 이루는 것은, 지금의 사랑과 헌신이 앞으로의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변치 않고 지속될 것이라는 깊은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지속성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 믿음 역시 산산조각 나고 맙니다. 유능하다고 믿었던 의사가 병을 고치지 못하고 속수무책일 때, 환자와 보호자의 신뢰는 깨어집니다. 하늘처럼 믿었던 배우자의 외도로 사랑의 약속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날 때, 가정은 파탄에 이르고 맙니다. 이처럼 믿음의 지속성이란 관계와 삶의 안정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기둥과도 같습니다.

믿음의 또 다른 얼굴, 열정

그런데 믿음에는 이 '지속성'이라는 특징 외에,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열정'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단순히 대상을 신뢰하는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그 대상을 향한 뜨거운 마음, 즉 사랑을 동반합니다. 성경은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명확하게 표현합니다. 이는 믿음이 차가운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뜨거운 가슴과 의지가 결합된 전인격적인 행위임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이 믿음의 대상은 명확합니다. 바로 온 인류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며, 죽음을 이기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 그 위대한 구원의 역사가 비로소 '나의 것'으로 적용됩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과 사랑의 불가분한 관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깊어지고 커질수록,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 또한 비례하여 뜨거워집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그 십자가의 의미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깊이 깨달을수록, 우리는 그분을 더 깊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작은 믿음의 위험성: 현대의 우상숭배

문제는 우리의 믿음이 작을 때 발생합니다. 믿음이 작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을 '작게' 사랑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 마음의 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예수님보다 더 신뢰하며 사랑하는 다른 존재가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내 믿음과 사랑의 중심에 예수님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하는 대상이 바로 '우상'입니다.

구약 시대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아세라 목상을 숭배했던 것만이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상은 더욱 교묘하고 다양한 형태로 우리 삶에 침투합니다. 돈, 성공, 명예, 쾌락, 심지어는 나 자신의 자아나 가족까지도 하나님보다 더 높은 자리에 놓일 때, 그것은 나의 우상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신도 섬겨서는 안 된다는 제1계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실질적으로 두 주인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상태를 요한계시록 3장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에 빗대어 엄중히 경고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했지만, 주님께서 보시기에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 멀고 벌거벗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함'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런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자들을 "내 입에서 토하여 버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차라리 주님을 완전히 부정하는 '차가운' 상태라면 자신의 영적 필요를 깨닫고 돌아올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세속적인 가치에 발을 담그고 있는 '미지근한' 상태는 영적 안일함에 빠져 자신을 돌아볼 기회조차 상실하기에 더욱 위험한 것입니다.

믿음의 열정을 회복하는 길

주님은 우리가 이처럼 미지근한 상태에 머무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뜨겁게'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식어버린 믿음의 열정을 다시 불태울 수 있을까요?

 

해답은 믿음을 키우는 것에 있습니다. "내가 정말로 예수님을 잘 믿어야겠다", "내 삶의 주인을 온전히 예수님으로 모셔야겠다"는 거룩한 소망과 열망이 우리 안에서 회복되어야 합니다.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한 가장 구체적이고 강력한 방법은 '말씀 암송'과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묵상하고 암송하는 것은, 세상의 가치관과 내 안의 불신을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영적 무기를 갖추는 일입니다. 기록된 말씀이 내 안에 살아 움직일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반석 위에 설 수 있습니다.

 

또한, '부르짖는 기도'는 나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가장 솔직한 신앙고백입니다. 형식적인 기도가 아닌, 가슴을 치며 간절하게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그분과의 친밀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더 이상 미지근한 상태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매일의 말씀 암송과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 믿음의 열정을 회복하십시오. 그리하여 세상의 우상들을 과감히 버리고 오직 주님 한 분만을 뜨겁게 사랑하며, 주님을 향해 더 높이 날아오르는 축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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