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기자는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4:10)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낮추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높아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높아짐은 인간의 몸에 있는 죄의 속성입니다.
마귀가 타락하면서 가졌던 본성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는 언제나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너는 높아져야 한다.”
그래서 노야 홍수 후에 사람들은 스스로 바벨탑을 쌓게 됩니다.
우리는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높아지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상대방을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옆 사람보다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 더 좋은 옷을 입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더 높아지려는 욕망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기분 나쁜 말을 하면, 화가 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마음 속에는 그 사람보다는 내가 더 낫지라는 높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때, 자존심 상하는 일들도 다 높은 마음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낮아지라고 하십니다.
얼마나 낮아져야 합니까?
예수님이 낮아지신 것처럼 우리도 낮아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십니다. (빌2:5)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정도로 낮아지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낮아지는 것이냐?
그것을 깨닫기 까지는 가히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저도 그것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버리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우리도 본받아야 합니다.
기분이 상할 때, 낮아지는 훈련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자존심이 상할 때, 예수님처럼 낮아지는 훈련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낮이지는 훈련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내가 낮아져 있다면,
누군가 너는 낮다라고 말해도 자존심 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원래 내 자리가 낮은 자리에 있기에 그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 저는 더 낮아져야 합니다. 라고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정도로 낮아지는 훈련 과정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