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가 계속해서 주님을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하나님은 우리가 삶에서 계속해서 예수를 바라보기를 원하시는데, 우리의 삶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예수님을 생각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예배 시간에는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 같지만, 예배를 마친 후에는 예수님이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왜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일까요?
예수를 바라보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먼저 우리가 예수를 바라보지 못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하면, 예수님의 도우심이 없어집니다.
이것은 마치 무더운 날에 고장나지 않은 아주 좋은 선풍기가 있는데, 선풍기가 돌아가지를 않습니다.
물론 선풍기가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코드를 플러그에 꽂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기가 공급이 안되니까 당연히 선풍기의 시원함을 누리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주님의 도우심이 오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계속해서 주님을 바라보면, 주님의 도우심이 계속해서 오는데 그렇지 못하다는데 있습니다.
죄를 짓기도 하고, 근심과 두려움이 올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책을 합니다.
아... 또 내가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했네.
아... 또 내가 죄를 지었네.
아... 또 내가 실수를 했네.
그렇게 자신을 한탄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왜냐? 사람이 밥을 먹고 나서 배가 부르면 음식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또 배가 고픕니다.
그러면, 배가 고픈 자신을 바라보며 한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님을 바라보지만 놓칠 때가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것을 놓친 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삶에 힘듬으로 나타납니다. 즉 배가 고픈 거지요.
그러면 다시 바라보면 됩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실패하지만 다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신앙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방법은 아주 쉽습니다.
주여... 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됩니다.
큰 소리로 하면 더욱 좋으나 그럴 상황이 안되면 속으로 주여하십시오.
화가 나도 주여, 힘들어도 주여, 일하면서도 속으로 주여... 하십시오.
그것이 예수를 바라보는 방법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예수를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는 즐겁게 시간을 보내지만, 싫어하는 것에는 시간을 보내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이해는 하지만, 실제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겁니다.
마치 연인이 사랑하지 않으면 만나는 것이 힘듭니다.
그러나 사랑하면 연락하고 만나고 시간보내는 것이 즐겁습니다.
예수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못받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 사랑하는 방법은 말씀 암송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소중해서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암송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승리하는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