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를 길들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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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야고보서 37~12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코로나가 우리 나라에 발생한지

거의 이 년이 다 돼 갑니다.

그 동안 많은 삶의 변화들이 생겼습니다.

모임도 자제를 해야 했습니다.

마스크도 껴야 했고, 카페에서는 앉아서 먹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소공상인들의 생계가 위협이 되었습니다.

사람들간의 접촉도 이제는 꺼려지는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시대를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하면,

 

[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람들은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시대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은 시대.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시대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왜요? 왕이 없으니까요...

 

이것이 바로 사사기 시대의 모습이었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은 모세라를 강력한 지도자 밑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 후에 모세가 죽자,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삼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왔고, 가나안 민족을 정복하며 땅을 차지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죽고 나자, 그 다음에는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그 때마다 하나님은 지도자를 세우셨고, 그 지도자를 사사라고 불렀습니다.

 

사사는 히브리어로 샤파트라고 불렀는데, 샤파트는 통치하다, 다스리다, 재판하다.’ 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사라는 지도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그것이 출애굽기에서 사사기까지의 이스라엘 역사입니다.

 

그런데, 사사기 마지막에 이런 말씀이 기록이 되었습니다.

 

[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다스리는 사람이 없으니 자기 마음대로 옳은 일을 했습니다.

 

① 사사기 시대에 이것이 왜 문제가 됩니까?

 

오늘날 이것이 또한 신앙 생활하시는 분들에게 문제가 됩니다.

왜 문제가 됩니까?

사사기 시대와 지금 2021년도와 어떻게 같습니까?

 

위 구절을 보면 사사기 시대에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삶에 왕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의 사사기 시대에 왕이 없었다고 하는데,

정확히 말해서 왕이 없었습니까?

아닙니다.

왕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왕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에는 왕이 없었습니다.

 

② 이스라엘의 왕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 자신이입니다.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러던 어느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이라는 선지자에게 왕을 요구합니다.

 

[삼상 8:6,7]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의 왕을 뽑으려고 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사기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속에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곧 무엇과 같은가 하면, 하나님은 나의 왕이 아닙니다. 라는 뜻입니다.

 

그리곤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을 왕으로 세우려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지만, 그들의 뜻대로 해주시는 것을 또한 볼 수 있습니다.

 

,,, 이쯤에서 여러분에게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의 왕은 누구십니까?

나의 인생의 왕은 누구인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이것을 명확하게 하셔야 합니다.

 

③ 내 인생의 왕은 누구인가?

 

예수 믿는 사람은 확신을 가지고 분명히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인생의 왕은 예수님이시다.

내 인생의 왕은 하나님이시다.

 

자 외쳐 봅시다.

예수님은 나의 왕이시다.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다. 아멘~~~...

 

④ 하나님이 나의 왕이시면, 우리는 누구의 통치 아래에 있어야 합니까?

 

바로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으면서 하나님이 나를 다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으니까.

즉 내가 창조되었으니까, 창조 목적대로 살면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으신 목적대로 살면 됩니다.

 

⑤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 지으셨는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은 나의 왕이 되기를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너무나 아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조의 목적대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왕이심을 인정하고 그 다스림 속에 살기를 원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 423절에 나오는 것입니다.

 

[요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왕이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왕이신 하나님께 예배하고,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예배 드리는 것이 지겨운 것이 아니라 기쁨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나의 삶의 목적이 완성이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마치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 어떤 분은 지겨울 수 있으나 맛있는 것이 즐겁지 않습니까.

그것은 육체는 먹어야 하기 때문에 먹어 줄 때 기쁜 것입니다.

그래서 먹는 일은 굉장이 기쁜 일이고, 즐거운 일이며 이것은 마치 예배를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날마다 떡을 떼면서 애찬을 했습니다.

오늘날은 성찬식으로 대치가 되지만, 사실, 먹는 것은 예배와 같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먹는 것입니다.

제발 먹을 때, 싸우지 마세요... 기쁨으로 먹으시고, 싸울 일이 있으면, 다 먹고 난 다음에 힘을 내서 싸우시기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야 하기 때문에 예배 드릴 때, 기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가 발생합니까?

사람들의 입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⑥ 왜 입이 문제가 됩니까?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약 3:7,8]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짐승, , 벌레, 동물들은 무엇이든지 다 길들일 수 있지만, 사람의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주 심각하게 야고보는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길들여지지 않는 혀가 얼마나 위험한가 하면,

 

말씀에 보니까.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입에서 악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입에서 더러운 것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입에서 나오는 더러운 이야기, 더러운 말, 더러운 욕.

이것이 사람 전체를 더럽게 하고,

사람의 인격을 더럽히고,

사람의 영혼을 더럽히기 됩니다.

얼마나 사람을 더럽히는지,

쉬지 아니하는 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악한 것이 나온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서로 사이가 틀어져 본 적이 있으신지요.

서로 사이가 틀어지면,

계속해서 그 사람이 생각이 나고,

계속해서 저주하고, 욕하고, 비방하고, 헐뜯고 그러지 않습니까.

무엇으로 그럽니까?

입으로 그러는 겁니다.

 

또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말로 사람을 죽입니다.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사람을 죽입니다.

그래서 어떤 공부 잘하는 착한 아이가 전교 2등을 했는데, 집에서 칭찬 들을 줄 알고 집에 있는 엄마에게 성적이야기 하니까. 엄마가 2등이라는 소리를 듣더니, 1등은 못하느냐고 소리를 지르면서 나가 죽으라고 화를 냅니다.

그 아이가 충격을 먹고, 정말로, 그 아파트 10층 높이에서 그 자리에서 뛰어 죽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말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살리는 소리를 해야 하는데, 죽이는 소리를 하니까.

정말로 사람을 죽이면서 삽니다.

사람들의 가슴에 못을 박으면서 삽니다.

무엇으로 그럽니까?

입으로, 혀로, 말로, 그러는 겁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그럴 수 있습니다.

문제는 교회 다니는 사람에게서 발생을 합니다.

무슨 문제가 생깁니까?

 

[약 3: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이것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합니다.

한 입으로 찬송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이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한 입에서 찬송도 나오고, 저주도 나오느냐

그럴 수 없다. 는 것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보면,

 

[약 3:10~12]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한 물과 쓴 물이 나오지 않는다.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맺지 못한다.

무화과나무는 무화과 열매를 맺는다.

포도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한다.

포도나무에서는 포도를 딴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너희들은 그렇게 당연한 것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⑦ 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당연한 것을 당연히 하지 못하고 삽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는 찬송도 하고 기도도 드리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왜 집으로 돌아가거나 일터에서는 쉬지 않게 악한 것이 나오고, 죽이는 독이 나옵니까?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송하는 입술을 가지고 있다면,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송하는 입술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사람들은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같이 나오는데 문제가 생깁니다.

이런 문제가 왜 생겼는지 아십니까?

 

이들을 향해서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는가 하면,

 

[막 7: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이것은 바로,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습니다.

 

겉 모습은 예배 드리는 것 같지만, 속 마음은 예배를 드리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외식하는 사람들입니다.

 

, 하나님은 나의 왕이심을 진정으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일상의 삶에서 감사가 나오지 않고, 기쁨이 없고, 내 마음에 아직도 여전히 미움이 있고, 싸움이 있고, 시기와 질투가 있고, 판단하고 비평하는 마음이 있고,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이 있다면, 하나님은 나의 왕이심을 내가 믿지 못하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틀림이 없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세게 말하는가 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들을 향해서 하나님이 로마서에서는 뭐라고 하셨는가 하면,

 

[롬 1:21~23]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을 알되, 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어졌나니...

 

, 마음으로 왕이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에 옳은대로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그냥 살아갑니다.

 

[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

그것은 하나님이 그냥 내 놨다는 증거입니다.

 

[롬 1:24,2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하나님은 그냥 그들의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게 됩니다.

 

, 하나님이 왕이 아니라 피조물이 왕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것의 근본 문제는 바로 하나님은 나의 왕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의 왕이십니다.

이렇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나의 왕이십니다.

이렇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혀를 길들이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왕이심을 믿는 것 만큼 혀는 길들여집니다.

왜냐하면, 말씀에 순종하기 시작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암송을 하면서 말씀대로 고백하기 시작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왜요? 성경말씀은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이니까요.

말씀을 무시하고, 말씀을 모르면서 왕되신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래서 암송에 목숨을 거셔야 합니다.

 

암송을 자꾸하다보면, 혀를 길들이게 됩니다.

왜요? 왕이신 하나님이 점점 믿어지니까요.

그 분의 말씀에 점점 순종하게 되니까요.

 

그전에는 내 마음대로 말을 내 뱉었는데, 이제는 내 마음대로 뱉으면 안됩니다.

그것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왜요? 나의 삶의 왕은 하나님이시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그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무서운 것이 아니고, 너무나 사랑스럽고, 따스한 아버지 품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

바로 우리가 안식해야 할 곳이 하나님 아버지 품임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나의 왕이심을 인정하고 그것이 믿어지면 질수록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로워지며, 우리의 삶은 윤택해지고, 우리의 삶은 더욱 아름다워집니다.

 

왜요?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말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함부로 말하면 안됩니다.

조심해서 말도 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그런 훈련을 자꾸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삶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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