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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기자는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4:10)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낮추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높아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높아짐은 인간의 몸에 있는 죄의 속성입니다. 마귀가 타락하면서 가졌던 본성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는 언제나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너는 높아져야 한다.” 그래서 노야 홍수 후에 사람들은 스스로 바벨탑을 쌓게 됩니다. 우리는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높아지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상대방을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옆 사람보다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 더 좋은 옷을 입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더 높아..
야고보서 5장 9절을 보면,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망은 하나님이 아주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하신 하나님에게 당신은 선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내게는 맞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 이런 길로 나를 인도하셨냐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이 불완전한 분이라고 내가 인정하고 그 분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아셔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나 홍해를 건넜을 때는 큰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광야 길로 하나님이 인도하셨는데, 광야에 물이 없을 때 ..
사람들은 사랑을 너무 쉽게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바로 육체의 사랑을 하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사랑은 본능적인 사랑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욕망, 정욕, 탐욕이라고 부릅니다. 마치 아무 부족함이 없었던 에덴 동산에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의 과실을 먹은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남편 아담에게 자기가 먹은 선악과를 가져다가 함께 나누어 먹습니다. 그녀는 이미 마귀에게 사로잡힌 후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멀어진 그들의 최후는 에덴에서 쫓겨난 것이었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 탓이 아니라 남탓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물며 아담이 고백하기를 하나님이 만들어서 내게 주신 하와 때문에 내가 먹었다고 하면서 ..
지금 뉴욕에는 쥐들이 너무 많이 있다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쥐들이 엄청 똑똑하다는 것입니다. 뉴욕의 쥐들이 식당에 들어가서 창고에 쌓여있는 음식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식당에서는 음식을 냉장고에 보관하자 쥐들은 냉장고의 전선을 깔아서 잘랐다고 합니다. 냉장고가 돌아가지 않아 음식을 밖에 버린 것을 다시 쥐들이 먹었다고 합니다. 전기선에 끊기자 식당은 영업을 할 수 없어서 결국 음식점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하루에 수십만 마리를 잡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쥐들이 그보다 더 많이 창궐한다고 합니다. 쥐들이 많은 이유는 공원에 사람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그냥 버리기 때문에 먹을 것이 많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단지 고양이를 더 많이 키우면 개체수가 조정이 될 것 같은데, 뉴욕은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가 봅니..
야고보서 3장 1~12절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성경을 읽다보면,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기록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바로 예수 안에서” 라는 단어입니다. 봉사를 하려고 해도 예수 안에서 기도를 하려고 해도 예수 안에서 예배를 드리려고 해도 예수 안에서 감사를 하려고 해도 예수 안에서 일을 하려고 해도 예수 안에서 성도들은 무슨 일을 하던, 무슨 말을 하던, 무슨 생각을 하든지 예수 안에서 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바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 안에서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예수 안에서 해야 합니까? 사실, 이것은 모호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 “예수 안에서 하십시오.” 라고 한다면, 분명히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 안에서 하는 것입니까?” 그 해답은 이렇습니다. 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 이야기가 나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