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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의 가사에도 있듯이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신명기 7장 9절에도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신실이라는 말은 처음과 끝이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약속은 변함없이 그대로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믿는 이유는 그 약속은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이시기에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도 신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실성을 잃어버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흔들릴 때가..
믿음에는 반드시 그 대상이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든, 상대방의 대한 믿음이든, 돈이나 물질이나 환경에 대한 믿음이든 믿음은 반드시 그 대상이 있습니다. 사람이 아프면 병을 고치기 위해서 의사를 찾아가는데, 의사가 나의 병을 고치리라는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늘을 나르는 비행기를 타는 것은 하늘을 날 때 비행기가 땅에 떨어지지 않고 목적지 까지 안전하게 나를 데려다 준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남녀가 서로 결혼을 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며 평생 살기로 약속한 믿음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계속 유지되리라는 지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속성이 깨지면, 믿음이 깨지는 것입니다. 의사가 나의 병을 못 고치면, 의사에 대한 신뢰가 깨지는 것과 마찬가지입..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 속에 믿음이라는 것을 심어 주셨습니다. 사람 속에 심겨진 믿음은 당연히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계속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심어 놓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거라" 하고 명령하셨고,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 살면서 선악과를 따먹지 않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뱀이 그 믿음을 시험합니다.하와에게 다가와서는“선악과를 따 먹어도 죽지 않어”라고 한 것이지요. 결국 하와의 믿음이 흔들렸고, 선악과를 따먹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파괴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사라졌고, 그 믿음이 있던 자리에 세상을 향한 믿음..
오늘 하루의 시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오늘 내가 어떻게 보내느냐는 내일 내가 어떤 삶을 살 것이가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잘 살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녀가 잘되고, 사업이 잘되고, 직장을 통해서 내 인생이 멋지기를 바랍니다. 내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바로 오늘 내가 하는 일에서 결정이 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사람은 반드시 심은대로 거두게 됩니다. 내가 오늘 말씀 암송을 하나 하게 되면, 내일의 나는 말씀을 머리 속에 기억하는 자가 됩니다. 그것은 오늘 내가 심었기 때문에 내일의 나는 심은 것을 품은 자가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오늘 내 주머니에 돌을 집어 넣으면, 내일 내 주머니에는 뭐가 들어..
뱀의 유혹을 받아서 에덴 동산의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선과 악을 판단하는 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에덴 동산에서 그들을 쫓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창 3: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처럼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명 나무 열매도 먹고 영생할까 하여 쫓아내 버립니다. 사람의 타락과 사람의 죄는 바로 선과 악을 아는 나무의 실과를 먹어서 선과 악을 판단하기 때문에 생기게 됩니다. 선악과의 특징은 선도 죄고, 악도 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
사람이 살다보면, 힘든 일들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다스리시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너무나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돌보고 계시는데, 왜 하나님이 그런 힘든 일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실까요? 자녀를 키워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자녀들이 힘들면 부모가 도와주면서 그 힘듬을 덜어주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어떨 때는 부모가 자녀가 힘듬을 알고도 그냥 놔 둘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어떤 때입니까? 바로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자녀가 공부가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면, 부모가 대신 공부해 주어서는 안됩니다. 공부가 힘들기는 하지만, 그것은 자녀가 직접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기에 옆에서 격려는 해 주지만 대신 공부를 하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도 우리가 실력을 키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